1882년 김유옥(金有玉)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82.4889-20170501.201600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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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김유옥(金有玉)
수취 : 삼가현(三嘉縣)
· 작성지역 삼가현
· 작성시기 光緖八年(1882)
· 형태사항 44.8 X 56.8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3*6.3, 三嘉縣印)
1 (흑색, 장방형, 17.8*3.5,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삼가 김해김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82년(고종 19)삼가현(三嘉縣) 백산면(栢山面) 백역촌(栢亦村) 제5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유옥(金有玉)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김유옥의 당시 나이는 61세로 임오(1822)생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김유옥의 가족은 처 오씨(吳氏), 아들 김성중(金性中), 며느리 밀양손씨(密陽孫氏)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82년(고종 19)三嘉縣 栢山面 栢亦村 제26통 제2호에 거주하는 幼學 金有玉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이 문서는 주호의 인적사항과 가족 및 사조사항에 대해 호구단자 작성방식인 列書로 기록하였다. 문서식은 호구단자이지만 문서에서 관의 증빙을 받아 발급하였음을 의미하는 官印, 署押, 周挾無改印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준호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호수와 통수 정화에 대해서는 官에서 追記한 것으로 보인다. 통수에 대해서 살펴보면 통수는 奴 丁化로 기재되어 있다. 남자종 정화김유옥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인데 호를 관리하는 통수가 노비인 것은 통수가 되기를 꺼려하는 그 당시 양반들의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 따르면 유학 김유옥의 당시 나이는 61세이고 임오(1822)생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유옥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는 學生 金百鎰이고 생부는 학생 金萬鎰이다. 조부는 학생 金聲律이며, 증조부는 학생 金善姬이다. 외조부는 학생 許耆로 본관은 하양이다.
吳氏의 나이는 61세이고 임오(1822)생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오씨의 부친은 학생 吳仁大이고 조부는 학생 吳守範이며 증조부 학생 吳善姬이다. 외조부는 학생 姜禹龍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김유옥오씨 슬하에 아들 1명이 있다. 아들의 이름은 金性中이고, 나이는 33세이며 경술(1850)생이다. 이후 연관문서에서 김성중金基浹으로 개명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며느리 密陽孫氏의 나이는 36세로 정미(1847)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남자종 1口가 있다.
문서의 말미에 이전 식년인 기묘년(1879)의 호구와 대조하여 확인하였음을 기재하였다.
김유옥이 거주하는 삼가현 백산면 백역촌은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백역리이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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