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김유옥(金有玉)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76.4889-20170501.2016000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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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김유옥(金有玉)
수취 : 삼가현(三嘉縣)
· 작성지역 삼가현
· 작성시기 光緖二年(1876)
· 형태사항 44.3 X 55.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6.2*6.2, 三嘉縣印)
1 (흑색, 장방형, 19.0*4.0,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삼가 김해김씨
· 현소장처 무릉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76년(고종13)삼가현(三嘉縣) 백산면(栢山面) 백역촌(栢亦村)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유옥(金有玉)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유학 김유옥의 당시 나이는 55세로 임오(1822)생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주호의 가족으로 처 함양오씨(咸陽吳氏)와 아들 김성중(金性中)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76년(고종 13)三嘉縣 栢山面 栢亦村 거주하는 幼學 金有玉이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이 문서는 주호의 인적사항과 가족 및 사조사항에 대해 호구단자 작성방식인 列書로 기록하였다. 문서식은 호구단자이지만 문서에서 관의 증빙을 받아 발급하였음을 의미하는 官印, 署押, 周挾無改印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준호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학 김유옥의 당시 나이는 55세로 임오(1822)생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김유옥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학생 金百鎰이고, 생부는 학생 金萬鎰이다. 조부는 학생 金聲律이며, 증조부는 학생 金益宗이다. 외조부는 학생 許耆으로 본관은 하양이다.
이 문서부터 김유옥의 생부 김만일이 기재가 되어 김유옥이 양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유옥의 나이를 고려하였을 때 이전 연관문서에도 이미 양자였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기재하지 않다가 본 문서부터 기재한 것이다.
吳氏의 나이는 55세이고, 생년은 임오(1822)생으로 김유옥과 동갑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오씨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학생 吳仁大이고, 조부는 학생 吳守範이며, 증조부는 학생 吳善姬이다. 외조부는 학생 姜禹龍으로 본관은 진양이다.
김유옥에게는 아들 1명이 있는데 아들의 이름은 金性中으로 나이는 27세이며, 경술(1850)생이다. 김성중金龍碩에서 개명한 이름이고 이후 金基浹으로 개명하는 것을 연관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유옥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남자종 丁化가 있다. 이전문서인 1873년 김유옥의 호구단자에서 여자종이었는데 이 문서부터 남자종으로 기재하였다.
이 호구단자는 官印과 行縣監의 署押을 찍었다. 처 오씨의 출생간지를 고친 흔적이 보이고 있지만 周挾無改印을 형식적으로 찍었다.
김유옥이 거주하는 삼가현 백산면 백역리는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백역리이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신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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