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幼學 李傪煥이 53세에 작성하여 靈光郡에 제출한 호적단자이다. 문서에는 주호가 거주한 곳이 어느 지역인지 기재되지 않았으나, 1687년 연관문서를 통해 영광군임을 알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이참환은 정해(1827)생이며, 본관은 전주이고, 陳良面 支庄里 第1統 第4戶에 거주했다. 주호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學生 李相永이고, 조부는 학생 李宗德이며, 증조부는 학생 李光瑞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恒年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1870년 연관문서에 기재된 이준환의 생년간지도 정해년(1827)이며, 사조사항도 이참환과 일치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둘은 동일인물이며 이참환의 개명 전 이름이 이준환인 것으로 파악된다.
처 昌寧魯氏는 50세로 경인(1830)생이다.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학생 魯永采이고, 조부는 학생 魯學須이다. 증조부는 학생 魯正國이며, 외조부는 학생 金性允으로 본관은 광산이다.
아들 유학 李達得은 25세로 을묘(1855)생이다.
기재된 노비는 2口로 문서 하단에 連書했다.
문서 말미에 '光緖五年 己卯式'을 기재해 문서의 작성연도가 1879년임을 밝혔다.
이 문서의 형식을 살펴보면 첫 행에 주소지를 기재했으며 통・호수를 朱墨으로 추기했다. 본문은 列書하였고 문서 중앙 하단에 靈光郡印과 周挾字改印을 겹쳐 찍었으며, 문서 좌측 상단에 行節制使의 署押이 확인된다.
주호가 거주한 영광군 진량면 지장리는 현재 영광군 법성면 덕흥리 일대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