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순조 34) 平昌郡에서 南面 入呑里에 사는 幼學 李國莘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典律通補에 전하는 준호구의 일반적인 작성방식은 連書인데, 이 문서에서는 列書 방식으로 가족구성원과 四祖, 노비사항에 대해 기록하였다. 준호구에서 官印, 戶口相準印, 署押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이 문서는 호구단자 형식을 띤 준호구임을 알 수 있다.
준호구에는 主戶의 인적사항과 가족, 소유한 노비에 대한 사항 및 주호 내외의 사조 등이 기재되는데, 이 문서 역시 이러한 내용을 기재하고 있다.
먼저 주호에 대해 살펴보면 이국신은 당시 67세로 생년은 무자년(1768)이고, 본관은 평창이다. 父는 學生 李就煥이고, 祖는 학생 李壽謙이다. 曾祖는 학생 李泰禎이며, 外祖는 학생 辛聖欽으로 본관은 영월이다.
이국신의 妻는 星州李氏이고, 나이는 이국신보다 한살이 적은 66세로 기축(1769)생이다. 처 이씨의 부친은 학생 李光莢이고, 조부는 학생 李世華이며, 증조부는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 李重蕃이다. 외조부는 학생 丁泰龍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아들의 이름은 李相殷으로 당시 나이는 22세이고, 생년은 계유년(1813)이다. 며느리 熊川朱氏는 무진(1808)생으로 나이는 27세이다.
노비에 대해서는 逃亡奴婢 2口와 買得婢 1구가 준호구에 기록되어 있다. 도망간 노비는 여자종 順分과 순분의 1소생 千得인데, 병자년에 도망갔다. 이 준호구가 작성된 해는 1834년인 점과 순분과 천득이 이국신 준호구에 처음 기록된 해는 1816년인 점을 미루어 볼 때, 두 노비가 도망간 병자년은 1816년일 가능성이 크다.
매득한 여자종은 福占으로 경오생이다. 순분과 천득의 나이는 1816년 준호구에 출생연도의 간지와 나이가 밝혀져 있지만 복점은 출생한 해의 간지만 기재되어 있어 복점의 당시 나이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문서에는 준호구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官印과 行郡守의 署押, 周挾改印 등이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