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관찰사서리(觀察使署理) 춘천군수(春川郡守) 보고서(報告書)

ㆍ자료UCI: KNU+GWKSMC+KSM-XC.1899.4213-20190501.201800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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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보고서 | 정치/행정-보고-보고서
· 작성주체 발급 : 신병휴(申炳休)
수취 : 권직상(權直相)
· 작성지역 원주군
· 작성시기 光武三年(1899)
· 형태사항 28.8 X 38.4 | 1장 | 종이 | 한자, 한글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2.7*2.7, 原州郡守之章)
1 (적색, 정방형, 4.4*4.4, 原州郡印)
1 (적색, 정방형, 5.2*5.2, 江原道印)
· 원소장처 춘천 김현식
· 현소장처 춘천 김현식

연결자료

안내정보

1899년 11월 4일에 원주군수(原州郡守) 신병휴(申炳休)가 올린 보고서이다.
보고서에는 수취자의 관직인 관찰사서리(觀察使署理) 춘천군수(春川郡守)만 기재되어 있는데, 승정원일기를 통해 이 당시 관찰사서리 춘천군수의 이름은 권직상(權直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신병휴권직상에게 보고서를 올린 이유는 이번에 원주군에서 시행한 추향(秋享)과 절제(節祭)를 마쳤고, 여기에 참여한 헌관(獻官) 및 대축(大祝)의 이름을 성책(成冊)한 것을 보고하기 위해서이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99년 11월 4일에 原州郡守 申炳休觀察使署理 春川郡守에게 올리는 보고서이다.
보고서는 하급기관에서 상급기관으로, 혹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특정 업무 현황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문서를 말한다. 문서에는 수취자의 관직만 적혀있고, 이름은 기재되지 않았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898년 12월에서 1899년 7월까지 趙鍾弼강원도 관찰사로 복무하였고, 후임으로 1899년 12월에 鄭日永이 제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당시 춘천군수權直相이었는데, 조종필의 이임 이후 관찰사가 임명되지 않았던 5개월 동안 권직상관찰사서리였음을 알 수 있다.
보고서의 첫 행에는 문서번호인 '報告第一百六號'를 기재하였다. 원주군수관찰사서리 춘천군수에게 보고서를 올리는 이유는 원주군에서 이번에 시행한 秋享과 節祭를 마쳤다는 것과 祭禮에서 獻官, 大祝을 담당하였던 이들의 성명을 成冊하고, 또 수정한 사항을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문서에 기록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上送한 보고서를 11월 10일에 확인하였다라는 내용의 題辭가 있다.
참고문헌
박준호, 고문서의 서명과 인장, 박이정, 2016
문보미, 조선시대 관문서 關의 기원과 수용, 古文書硏究 제37집, 고문서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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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盛鍾, 15세기 牒呈의 분석, 古文書硏究 제22집, 고문서학회,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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