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95년(정조 19) 春川府에서 東山外面 萬法洞里 第十統 第二戶에 거주하는 洪彦喆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언철은 당시 나이가 67세로 기유(1729)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홍언철의 직역은 折衝將軍 行龍驤衛副司直 兼曹司五衛將이다. 홍언철의 부친은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고, 조부는 通德郞 洪周叙이며, 증조부는 通訓大夫 行刑曹正郞 洪藼이다. 외조부는 成均生員 金相岳이고, 본관은 연안이다.
홍언철의 처 淑夫人 李氏는 나이가 68세이고, 무신(1728)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처의 부친은 통덕랑 李東膺이고, 조부는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李寅徽이며, 증조부는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事 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成均館事 世孫左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廷弼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行濟州牧使 濟州鎭兵馬水軍節制使 兼全羅道防禦使 鄭啓章이며, 본관은 초계이다.
아들 通善郞 洪履八은 나이가 44세이고, 이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으나 연관문서를 통해 임신(1752)생임을 알 수 있다. 며느리 礪山宋氏는 나이가 29세이며, 정해(1767)생이다. 1774년부터 1789년까지 발급받은 5통의 준호구에는 며느리 孺人 李氏가 기재되어 있고, 1792년에는 며느리에 대한 기록이 없다가 이 준호구에 며느리 여산송씨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홍이팔은 유인 이씨가 사망한 뒤 여산송씨와 재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카 洪履七은 나이가 30세이고, 병술(1766)생이며, 조카 며느리는 全州李氏로 나이가 20세이고, 병신(1776)생이다. 1789년과 1792년에 발급받은 준호구를 통해 조카며느리 文化柳氏가 사망한 뒤 이 준호구에 기재된 전주이씨와 재혼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전하는 홍언철의 준호구 5통 중 조카사위 李榮會에 대한 기록이 이 준호구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영회는 나이가 32세로 갑신(1764)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이를 통해 홍언철 戶에는 조카딸 내외도 함께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언철이 소유한 노비는 총 50구로, 솔거노비와 외거노비, 도망노비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솔거노비는 총 10구이고, 외거노비는 총 26구이며, 도망노비는 총 14구이다. 외거노비 중 19구는 京, 양주, 양구, 강릉, 의령, 김해, 합천, 현풍, 성주 등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문서를 보면, 호의 주소 및 주호와 주호의 사조, 처와 처의 사조, 솔거인에 대해서 連書하였고, 행을 달리하여 소유노비에 대해 連書하였다. 문서 좌측 상단에는 署押이 있고, 그 아래에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서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