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80년(정조 4)에 春川府에서 洪彦喆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戶의 주소 및 주호와 주호의 사조, 주호의 처와 처의 사조, 솔거인에 대해 連書하고, 행을 달리하여 소유한 노비에 대해 連書하였다.
문서에 의하면 홍언철은 東山外面 萬法洞里 제12통 제3호에 거주하였는데, 統首는 鄭甲辰이다. 홍언철의 관직은 通訓大夫 前行司諫院司諫이다. 이 준호구를 발급받을 당시 홍언철의 나이는 52세로 기유(1729)생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홍언철의 사조를 보면 부친은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고, 조부는 通德郞 洪周叙이며, 증조부는 通訓大夫 行刑曹正郞 洪藼이다. 외조부는 成均生員 金相岳이고 본관은 연안이다.
홍언철의 처 淑人 李氏는 나이가 53세이고, 무신(1728)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부친은 통덕랑 李東膺이고, 조부는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李寅徽이며, 증조부는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事 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 成均館事 世孫左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廷弼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行濟州牧使 濟州鎭兵馬水軍節制使 兼全羅道防禦使 鄭啓章으로 본관은 초계이다.
홍언철 호에는 제수 孺人 姜氏, 아들 洪履八, 며느리 孺人 李氏, 조카 洪履七이 함께 거주하였다. 제수 유인 강씨는 당시 나이가 48세이고, 계축(1733)생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홍언철의 아들은 從仕郞 홍이팔이며, 나이는 29세로 임신(1752)생이다. 며느리 유인 이씨는 나이가 28세이며, 계유(1753)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조카 童蒙 홍이칠은 나이가 15세이고, 병술(1766)생이다. 준호구에는 나이가 어리거나 혼인하지 않은 사람은 기재하지 않는데, 조카 홍이칠은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준호구에 기재되어 있다.
홍언철이 소유한 노비는 총 52口인데, 솔거노비와 외거노비, 도망노비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솔거노비는 총 16구로 남자종과 여자종이 각각 8구씩이다. 외거노비는 총 36구인데, 지역이 기재되지 않은 노비가 17구, 지역이 기재된 노비가 19구이다. 기재된 지역은 京, 양주, 양구, 강릉, 의령, 김해, 합천, 현풍, 성주 등이다. 도망노비는 총 14구로 남자종과 여자종이 각각 7구씩이다.
문서 좌측에는 行府使의 署押이 있고, 그 아래쪽에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져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