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83년(정조 7)에 春川府에서 東山外面 萬法洞里 제14통 제5호에 거주한 洪彦喆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언철은 通訓大夫 前行司諫院司諫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이며, 기유(1729)생이다. 본관은 남양이다. 홍언철의 부친은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고, 조부는 通德郞 洪周叙이며, 증조부는 通訓大夫 行刑曹正郞 洪藼이다. 외조부는 成均生員 金相岳으로 본관은 연안이다.
함께 기재된 홍언철의 가족은 처와 큰 아들 내외, 둘째 아들, 제수와 조카이다.
홍언철의 처는 淑人 李氏로 나이가 56세이고, 무신(1728)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숙인 이씨의 부친은 통덕랑 李東膺이고, 조부는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李寅徽이다. 증조부는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事 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成均館事 世孫左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廷弼이며, 외조부는 본관이 초계인 通政大夫 行濟州牧使 濟州鎭兵馬水軍節制使 兼全羅道防禦使 鄭啓章이다.
큰 아들 從仕郞 洪履八은 나이가 32세이고, 임신(1752)생이다. 며느리 孺人 李氏는 나이가 31세이고,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둘째 아들 洪履九는 나이가 13세이고, 신묘(1771)생이다.
제수 孺人 姜氏는 나이가 51세로 계축(1733)생이고, 본관은 진주이다. 조카 童蒙 洪履七은 나이가 18세이고, 병술(1766)생이다.
준호구나 호구단자에는 나이가 어리거나 혼인하지 않은 자식의 경우 기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둘째 아들과 조카가 기재되어 있는 것은 특이한 사례로 보인다.
홍언철이 소유한 노비는 총 58口로 솔거노비 13구, 외거노비 31구, 도망노비 14구를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솔거노비는 남자종이 6구, 여자종이 7구이다. 외거노비는 남자종 18구, 여자종 13구인데, 이 중 거주 지역이 기재된 노비는 京 2구, 양주 4구, 양구 4구, 강릉・의령・김해・합천 각 1구, 현풍・성주 각 2구이고, 거주지역이 기재되지 않은 노비는 13구이다. 도망노비는 남자종과 여자종이 각 7구씩이다.
문서를 보면, 주호와 처,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連書하였고, 행을 달리하여 노비에 대해 連書하였다. 문서 좌측에는 署押이 있고, 官印과 周挾改印이 겹쳐져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