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86년(정조 10)에 春川府에서 洪彦喆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언철은 東山外面 萬法洞里 제14통 제5호에 거주하였다. 이곳의 統首는 朴善方이라 기재되어 있다. 홍언철의 직역은 通訓大夫 行寧海都護府使 安東鎭管兵馬同僉節制使이며,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의 나이는 58세로 기유(1729)생이다. 본관은 남양이다.
홍언철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洪昌震이고, 조부는 通德郞 洪周叙이며, 증조부는 通訓大夫 行刑曹正郞 洪藼이다. 외조부는 成均生員 金相岳이고 본관은 연안이다.
문서에는 홍언철의 처와 큰 아들 내외, 작은 아들, 제수와 조카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처 淑人 李氏는 나이가 59세이고, 무신(728)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준호구에는 처의 사조도 기재되는데, 숙인 이씨의 부친은 通德郞 李東膺이고, 조부는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李寅徽이며, 증조부는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義禁府事 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成均館事 世孫左副賓客 五衛都摠府副摠管 行通政大夫 承政院左副承旨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 李廷弼이다. 외조부는 通政大夫 行濟州牧使 濟州鎭兵馬水軍節制使 兼全羅道防禦使 鄭啓章으로 본관은 초계이다.
홍언철의 큰 아들은 從仕郞 洪履八인데, 나이가 35세이고, 임신(1752)생이다. 며느리 孺人 李氏는 나이가 34세로 계유(1753)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작은 아들 洪履九는 나이가 16세이고, 신묘(1771)생이다.
제수 孺人 姜氏는 나이가 54세이고, 계축(1733)생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조카 洪履七은 나이가 21세로 병술(1766)생이다.
홍언철이 소유한 노비는 총 57口가 기재되어 있다. 솔거노비와 외거노비, 도망노비로 구분하였는데, 솔거노비는 총 13구이고 그 중 남자종은 6구, 여자종은 7구이다. 외거노비는 총 30구로 거주 지역이 기재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분된다. 거주 지역이 기재된 노비는 京 2구, 양주 4구, 양구 5구, 강릉・의령・김해・합천・현풍 각 1구씩, 성주 2구이다. 도망노비는 총 14구로 남자종 7구, 여자종 7구이다.
문서를 보면 문서의 두 번째 행 위에 朱點이 찍혀 있으며, 문서 좌측에는 署押이 기재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周挾改印과 官印이 겹쳐서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