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신축년 10월 1일에 金泰一이 보낸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書信・書札・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지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을 기록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候問・自敍・述事・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에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간찰도 이러한 간찰의 양식을 맞춰서 작성하였다.
김태일은 자신을 宗下라고 지칭하였는데, 이 말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후손이라는 뜻으로 항렬이 높은 종씨 어른에게 자신을 이르는 말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태일은 일전에 주신 간찰이 아직까지 위로된다는 인사말로 간찰을 시작하였다. 수신인이 지내는 형편이 연이어 좋고 집안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의 쓰라린 맛을 겪고 있으며 집안 소식도 자주 끊겨 울적하다고 했다. 다만 東閣이 근래 안녕한 것을 다행이고 기쁘게 여긴다고 하였고 觀豊軒이 崇恩殿 齋郞의 직함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김태일은 수신인이 말한 高濟 형의 송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았는데 외면상으로 공평하게 귀결되었으니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서 執綱과 상의하여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소장(訴狀)을 함께 보낸다고 한 점으로 미루어 김태일이 살펴본 소장을 수신인에게 간찰과 함께 보낸 것으로 보인다.
崇恩殿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御眞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魂殿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南別殿으로 이름 고치긴 했으나 계속 숭은전이라고도 하였으며 1633년(인조 11)에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어진도 이 곳에 두었다. 1677년(숙종 3)에 숭은전을 개축하면서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고 이름을 永禧殿이라고 고쳤다. 영희전에 있던 어진은 1921년에 창덕궁 璿源殿에 봉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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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천, 조선후기 한글간찰의 형식과 내용, 한말연구18, 한말연구학회, 2006
전병용, 간찰의 안부인사에 대한 유형 연구,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