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계묘년 3월 17일에 泰一이 종친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간찰의 발신인이 본지에 내용을 작성할 때 공간이 모자라면 본문의 위쪽 여백에 이어서 쓴다. 위쪽 여백도 다 사용하였으면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고, 이 이상 내용을 작성할 경우에는 본문 행간에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본문 여백에 내용을 돌려가면서 쓰는 것을 '回文'이라고 하며, 이 간찰은 위쪽 여백에 먼저 적지 않고, 우측 여백에 내용을 이어 적었다.
간찰의 수신인은 알 수 없으나 태일이 자신을 '宗下生'이라고 칭한 것으로 보아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은 종친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종하생은 종친 사이에서 나이가 적고 벼슬이 낮은 사람이 나이가 많고 벼슬이 높은 사람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내용을 보면, 요즘에 조용히 지내는 형편이 두루 강건하고 아드님도 부모 모시며 잘 지내는지 그리움이 그지없다며 안부를 전하였다. 자신은 객지에서 지난날 모습대로 있고 東閣에서 정사를 돌보는 형편이 안녕해서 다행스럽다면서 근황을 전하였다. 이어서 이씨 집안 山訟에서 엄중한 처분을 부탁하려고 바치니 헤아려서 조처를 내려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산송은 묘지와 그 묘지를 둘러싼 산과 관련된 소송으로 조선시대의 가장 흔했던 詞訟의 하나이다. 묏자리에 의해 발생한 가문끼리의 갈등이 산송으로 이어졌으며, 더 좋은 자리에 묘를 쓰기 위하여 불법적인 일도 시행하였다. 태일은 '동각에서 정사를 돌보는 형편'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지방 관아에서 守令이나 監司로 재임 중인 것으로 추측되며, 자신 보다 벼슬이 높은 종친 어르신에게 산송과 관련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간찰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