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85년(고종 22) 1월에 三陟都護府로부터 幼學 洪秉珪가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준호구는 주호가 해당 관에 신청하여 발급받았고 지금의 주민등록등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며, 신분 및 재산을 증명하는 효력이 있었다. 삼척 남양홍씨 가문의 호구문서는 총 6통이 현존해 있고 시기는 1858년부터 1900년까지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홍병규의 당시 나이는 42세로 갑진(1844)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그리고 이름을 洪秉行에서 홍병규로 개명했다. 거주지는 道下面으로, 이 지역은 현재 동해시 송정동과 천곡동 부근으로 추정된다. 부친은 학생 洪瑞睦이고 조부는 학생 洪仁範이다. 증조는 학생 洪永夏이고 외조부는 학생 朴聖達인데 본관은 밀양이다.
홍병규의 처 李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는데 처의 당시 나이는 37세로 기유(1849)생이고 본관은 전주이다. 부친은 出身 李秉善이고 조부는 학생 李敬宙이다. 증조부는 학생 李命殷이고 외조부는 학생 千麗漢인데 본관은 영양이다. 부친 이병선의 직역인 출신은 일반적으로 문과・무과・잡과에 합격하고 아직 출사하지 못한 사람을 칭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주로 무과 출신자를 가리키게 되었다.
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호구단자처럼 列書하여 작성하는 방식을 따랐지만, '考乙酉式成籍戶口帳內'라는 문장을 보아 준호구임을 알 수 있다. 먼저 문서 머리에 발급년도와 발급기관을 적고 그 위에 三陟府印을 날인했다. 그 다음 줄을 옮겨 거주하고 있는 지역과 주호내외의 사조사항을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 壬午戶口准이라 하여 이전 식년인 임오년의 호구장적과 비교·대조하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문서 하단에는 黑墨으로 같은 호에 거주하고 있는 인원인 남1 여1을 적고 그 위에 周挾改印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문서 왼쪽에 삼척도호부사의 서압을 넣었는데 이를 통해 관의 확인을 받은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