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61년(철종 12) 三陟都護府로부터 幼學 洪瑞睦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준호구는 현재의 주민등록등본에 해당하며 3년을 주기로 한 식년마다 해당 관아에서 발급받았으며 신분 및 재산의 증명서로 사용되었다. 현재 삼척 남양홍씨 가문의 호구문서는 총 6통의 문서가 남아있고 문서의 작성 시기는 1858년부터 1900년까지다.
이 문서에 따르면 유학 홍서목은 처 朴氏와 같이 살고 있으며, 소유한 노비는 婢 正越이다. 그리고 홍서목은 삼척도호부 道下面에 거주했는데 이 지역은 현재 동해시의 송정동과 천곡동 일대였을 것으로 파악된다. 홍서목의 당시 나이는 38세로 갑신(1824)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부친은 학생 洪仁範이고 조부는 학생 洪永夏이다. 증조부는 학생 洪重濟이고 외조부는 崔啓昌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박씨의 나이는 45세로 정축(1817)생이고 본관은 강릉이다. 박씨의 부친은 학생 朴聖達, 조부는 朴應奎이다. 증조부는 老職 崇政大夫 同知中樞府事 朴仁三이고 외조부는 학생 金昭三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문서의 앞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처 박씨의 나이가 세 살이 늘은 것과 이전 식년 문서인 무오년의 호구를 통해 이 문서는 홍서목이 38세에 작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호구단자와 같이 열서하여 작성했지만 '考辛酉式成籍戶口帳內'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므로 준호구로 볼 수 있다. 첫 줄에 문서의 발급년도와 발급기관을 작성하고 그 위에 三陟府印을 찍었다. 그리고 줄을 바꿔 살고 있는 지역과 주호 내외의 사조와 가족구성원 그리고 거느리고 있는 노비를 列書로 기재했다. 그리고 문서 마지막 줄에는 '戊午戶口准'이라 하여 이전 식년의 호구장적과 비교해서 작성했음을 알리고 그 옆에 삼척부사의 서압을 넣어 관의 확인을 받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이 문서는 1858년의 문서와는 다르게 朱點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만 찍었다. 또한 문서 하단에 朱墨으로 같이 거주하고 있는 인원을 기재했는데 男 1, 女 1 이라 적어 주점의 숫자와는 맞지 않는다. 게다가 주묵으로 수정한 부분이 두 군데가 있으나 이를 반영하지 않고 周挾改印을 찍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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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