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76년(고종 13) 1월에 三陟都護府로부터 幼學 洪瑞睦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준호구는 지금의 주민등록등본에 해당하며 신분이나 재산의 증명서로 이용되었다. 삼척 남양홍씨 가문의 현전하는 호구문서의 시기는 1858년부터 1900년까지로 모두 6통의 문서가 있다.
문서에 따르면 유학 홍서목은 처 朴氏와 같이 살고 있다. 홍서목의 당시 나이는 53세로 갑신(1824)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거주지는 道下面으로 이 지역은 현재 동해시의 송정동과 천곡동 사이로 추정된다. 그의 부친은 학생 洪仁範이고 조부는 학생 洪永夏이며 증조부는 학생 洪重濟이다. 외조부는 학생 崔啓昌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박씨의 나이는 60세로 정축(181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박씨의 부친은 학생 朴聖達이고 조부는 학생 朴應奎이며 증조부는 老職 崇政大夫 同知中樞府事 朴仁三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昭三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홍서목의 자식관계에 대해서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1885년과 1900년의 연관문서를 보면 장남 洪秉珪와 홍병규의 처 李氏, 차남 洪秉學과 홍병학의 처 孔氏가 기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홍병규와 홍병학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던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식들이 혼인을 하지 않아 호적에 기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문서는 호구단자의 작성방식으로 작성됐으나, '丙子式成籍戶口帳內'라는 문장을 통해 준호구임을 알 수 있다. 문서의 구성을 보면 첫 줄에 문서의 발급년도와 발급기관을 기재하고 그 위에 三陟府印을 답인했다. 그 다음 줄에 거주하고 있는 지역과 인적사항, 주호내외의 사조사항을 열서했다. 또한 문서 마지막에 癸酉戶口准이라 기재하여 이전 식년인 계유년의 호구장적과 비교해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인적사항을 主點으로 찍었는데, 보통은 같이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에만 표시를 한다. 문서 하단에는 朱墨으로 같이 살고 있는 인원수인 男一, 女一을 적고 그 위에 周挾改印을 날인했다. 마지막으로 문서 왼쪽에 삼척도호부사의 手決을 넣었는데 이로 인해 관의 확인을 받은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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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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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