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58년(철종 9) 幼學 洪瑞睦이 三陟都護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준호구는 지금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하며 신분 및 재산의 증명서로 사용되었다. 삼척 남양홍씨 가문의 호구문서는 총 6통이 현존해있고 문서 작성 시기는 1858년부터 1900년까지이다.
문서에 따르면 유학 홍서목 당시 나이는 35세로 갑신(1824)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거주지는 道下面 제1리 16통 1호였는데 이곳은 현재 동해시의 송정동과 천곡동 일대로 파악된다. 그의 부친은 학생 洪仁範이고 조부는 학생 洪永夏이다. 증조부는 학생 洪重濟이고 외조부는 학생 崔啓昌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朴氏의 나이는 42세이고 정축(181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박씨의 부친은 학생 朴聖達이고 조부는 학생 朴應奎이다. 증조부는 老職 崇政大夫 同知中樞府事 朴仁三이고 외조부는 학생 金昭三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소유한 노비는 正越이고 정축생이다.
이 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첫 줄에 문서의 발급년도와 발급기관을 기재하고 그 위에 三陟府印을 날인했다. 그 다음 줄을 옮겨 살고 있는 지역과 가족구성원, 주호내외의 사조사항, 소유하고 있는 노비를 列書했다. 또한 문서 마지막 줄에 乙卯戶口準이라 하여 을묘년(1855)의 호구장적과 비교하여 작성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黑點으로 모든 항목에 표시했는데, 보통은 朱點이나 흑점을 찍을 때 같이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에게 표시를 한다. 문서 하단에는 黑墨으로 현재 같은 호에 소속되어 있는 인원을 기재했다. 그런데 인원을 기재할 때 노비를 기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문서에서는 노비도 포함하여 男一, 女二라고 기재했다. 그리고 그 위에 周挾改印을 찍었으며, 문서 왼쪽에 삼척도호부사의 수결이 있어 관의 확인을 받은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호구단자의 작성 방식을 따랐으나, '考戊午式成籍戶口帳內'라는 문장을 통해 준호구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의 문서는 18세기 중반부터 준호구의 작성절차가 간소화되면서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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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