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67년(고종 4) 1월에 三陟都護府로부터 幼學 洪瑞睦이 발급받은 준호구이다.
삼척 남양홍씨 가문의 호구문서는 모두 6통이 현전하며 문서의 작성 시기는 1858년부터 1900년까지이다.
문서에 따르면 유학 홍서목은 처 朴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홍서목의 당시 나이는 44세로 갑신(1824)생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거주지는 道下面으로 이곳은 현재 동해시의 송정동과 천곡동 일대로 짐작된다. 그의 부친은 학생 洪仁範이고 조부는 학생 洪永夏이다. 증조부는 학생 洪重濟이고 외조부는 학생 崔啓昌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처 박씨의 나이는 51세로 정축(1817)생이며 본관은 강릉이다. 박씨의 부친은 학생 朴聖達이다. 조부는 학생 朴應奎이고 증조는 老職 崇政大夫 同知中樞府事 朴仁三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昭三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소유한 노비는 기재되지 않았는데, 1861년까지의 문서에는 婢 正越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문서를 보면 첫 줄에 발급년도와 발급기관을 기재했다. 그리고 줄을 옮겨 거주지와 가족, 주호내외의 사조를 열서하고 세 번째 줄 위에 三陟府印을 찍었다. 그리고 문서 마지막에 '甲子戶口準'이라 하여 이 문서가 이전 식년인 갑자년의 호구장적과 비교해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든 인적사항에 黑點을 찍었는데, 대개는 점으로 표시를 할 때 노비를 제외하고 같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 위에 표시했다. 그리고 문서 하단에 黑墨으로 같은 호에 살고 있는 인원인 男1, 女1을 기재하고 그 위에 周挾改印을 찍었다. 문서 왼쪽에는 삼척도호부사의 수결이 있는데 이를 통해 관의 확인을 받은 문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는 '考丁卯式成籍戶口帳內'라는 문장을 통해 준호구임을 알 수 있는데, 호구단자식과 같이 列書하였다. 이것은 준호구의 작성절차 간소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작성절차의 간소화는 호구단자 2장을 관아에 제출하고 나머지 한 장에 도장을 받아 돌려받던 기존의 방식에서, 한 장을 제출하고 바로 도장을 받아 돌려받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의 문서는 18세기 중반부터 몇몇 지역에 나타난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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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