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영경묘(永慶墓) 수봉관(守奉官) 하첩(下帖)

ㆍ자료UCI: KNU+GWKSMC+KSM-XB.1900.4223-20190501.2018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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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작성주체 발급 : 영경묘수봉관(永慶墓守奉官)
수취 : 삼척군수(三陟郡守)
· 작성지역 삼척군
· 작성시기 庚子(1900)
· 형태사항 28.0 X 35.5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4.1*4.1)
· 원소장처 관동대학교박물관
· 현소장처 관동대학교박물관

연결자료

안내정보

1900년 8월 16일에 영경묘(永慶墓)의 수봉관(守奉官)행군수(行郡守)에게 보낸 문서로 첩(帖)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말미를 받아[受由] 상경하여 영경묘의 수봉(守奉)을 비우게 되었으니 유림(儒林) 가운데 감당할 사람을 내일 오전으로 정하여 읍(邑)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1900년 8월 16일에 永慶墓의 守奉官行郡守에게 보낸 下帖이다.
하첩은 下帖는 원래 관아에서 일꾼이나 상인에게 금전이나 물품을 줄때 작성해 주었던 문서이지만 수령이 향약 집강이나 齋任 등에게 訓諭하거나 지시를 내릴 때에도 사용되었다.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말미를 받아[受由] 상경하여 영경묘의 守奉을 비우게 되었으니 儒林 가운데 감당할 사람을 내일 오전으로 정하여 邑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이 문서와 관련하여 3건의 품목과 1건의 上書도 함께 전하며 이 하첩이 날짜상 가장 빠르게 작성되었다.
영경묘는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의 부인 삼척이씨의 무덤으로 이양무의 무덤인 준경묘와는 4㎞정도 떨어져 있으며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위치한다. 조선 초기부터 이양무와 그의 부인 무덤이 강원도에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졌으나 조선 말기까지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두 무덤이 조정으로부터 왕실묘로 인정받게 된 것은 대한제국 성립 후인 1899년이며, 사적 제524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배재홍 옮김, (국역)준경묘영경묘고문서집성, 삼척시립박물관,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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