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8월 19일에 見朴面 丹谷洞에 거주하는 沈鎭河가 城主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는 백성들이 임금 이하의 왕세자나 관찰사 그리고 고을 수령에게 제출하는 청원서이다. 문서의 내용은 심진하가 大墓 守奉人으로 차정된 것을 사양한다는 것이다. 뎨김[題音]에서는 이미 公薦으로 나왔으니 어찌 사양하겠느냐며 빨리 齋室을 만들라고 하였다.
이 문서와 관련하여 1건의 下帖, 3건의 稟目이 전한다. 8월 16일에 전임 수봉관이 上京하면서 군수에게 다음날 오전까지 유생 가운데에서 적임자를 찾으라는 下帖을 보낸 바 있다. 이에 8월 17일에 士林이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품목을 군수에게 올렸다. 다음날인 8월 18일에 사림들은 심진하를 공천하는 품목을 올렸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8월 19일 심진하가 城主에게 수봉관 차정을 사양하는 상서를 올렸고 성주는 빨리 재실을 만들라고 하였다.
이 문서가 바로 그 상서이며,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9월 4일에는 鄕中에서 城主에게 다시 품목을 살펴보면 당시의 수봉관이 李輔鉉임을 알 수 있어 심진하는 수봉관에 임명되지 않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문서에서 칭하는 대묘는 준경묘와 영경묘로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그의 부인 삼척이씨의 무덤을 일컫는다. 조선 초기부터 이양무와 그의 부인 무덤이 강원도에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졌으나 조선 말기까지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두 무덤이 조정으로부터 왕실묘로 인정받게 된 것은 대한제국 성립 후인 1899년이며, 사적 제524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진하가 거주한 견박면 단곡동은 현재 동해시 북평동 봉정마을 일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배재홍 옮김, (국역)준경묘영경묘고문서집성, 삼척시립박물관,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