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68년(영조 44) 漢城府에서 무자년(1768)에 성적한 호구장적을 참고하여 通德郞 申景翰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신경한의 당시 나이는 50세로 기해(1719)생이며 본관은 평산이다. 평산신씨대동보에 의하면 신경한은 평산신씨 正言公派 25대손으로, '庚寅卒'이라 기재되어 있어 몰년은 경인년(1830)으로 파악된다. 신경한의 거주지는 한성부 西部 龍山坊 甕里中契 第28統 第1戶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용강동 일대에 해당한다.
주호의 사조사항을 살펴보면 부친은 通訓大夫 行戶曹正郞 申埜이고 조부는 통훈대부 行加平郡守 楊州鎭管兵馬同僉節制使 申錫華이다. 증조부는 贈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 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謚文肅公 崇祿大夫 行禮曹判書 兼判義禁府事 知經筵春秋館事 同知成均館事 弘文館提學 藝文館提學 五衛都摠府都摠管 申晸이며 외조부는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副摠管 行昭威將軍 世子翊衛司副率 金盛益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1738년 연관문서와 비교했을 때 부친 신야와 외조부 김성익의 관직명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친은 통훈대부 行任實縣監에서 통훈대부 행호조정랑으로 바뀌었고, 외조부는 소위장군 행세자익위사부솔에서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소위장군 세자익위사부솔로 바뀌었다.
문서에 기재된 신경한의 가족으로는 모친 淑人 金氏, 처 南氏, 아들 申震甲이 있다. 모친은 숙인 김씨로 73세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생년간지는 기재되지 않았으나, 1738년 연관문서를 통해 병자년(1696)임을 알 수 있다. 숙인 김씨의 부친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행소위장군 세자익위사부솔 김성익이다. 조부는 贈通政大夫 吏曹參議 行通訓大夫 沔川郡守 洪州진관병마동첨절제사 金壽賔이다. 증조부는 嘉義大夫 이조참판 兼同知經筵 義禁府春秋館事 오위도총부부총관 金光炫이며 외조부는 贈資憲大夫 吏曹判書 兼知經筵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成均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 世子左賓客 행통훈대부 司憲府執義 權譲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일반적으로 호구문서에는 주호 내외의 사조사항만 기재하지만, 이 문서에서는 모친의 사조사항까지 기재되어 있다.
처 남씨는 49세로 경자(1720)생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의령남씨의 부친은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행가선대부 同知敦寧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 南漢紀이고 조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兼同知經筵事弘文館提學 同知春秋館成均館義禁府事 世子左副賓客 오위도총부부총관 행통정대부 守慶尙道觀察使 兼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 大丘都護府使 南正重이다. 증조부는 輔國崇祿大夫 行知中樞府事 겸이조판서 判義禁府事 知經筵事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成均館事 오위도총부도총관 贈謚文憲公 南龍翼이며 외조부는 通德郞 沈若采로 본관은 기재하지 않았지만 1783년 연관문서를 통해 청송임을 알 수 있다.
아들 신진갑은 13세로 병자년(1756)생이다.
소유한 노비는 '率奴婢秩', '京居奴婢秩', '廣州奴婢秩', '驪州奴婢秩', '洪州奴婢秩' '逃亡奴婢秩'로 구분하였으며, 노비의 부모도 기재하였다.
이 문서를 보면 서두에 발급연도를 중국 연호로 기재하였고 발급지역을 밝혔다. 행을 옮겨 본문 및 노비사항을 連書하였고 漢城府印 3개가 확인된다. 문서 말미에 '乙酉戶口准給者'라고 기재하였는데, 이를 통해 이 문서는 을유년(1765)의 호구문서와 대조하여 발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한성부인과 周挾字改印은 문서의 마지막 행위에 겹쳐 찍었다. 문서 좌측에는 '堂上', '郎廳', '監董官'의 署押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장경준, 조선후기 호적대장과 戶의 성격,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