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부(발급), 홍훤(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五年(1666)
1666년(현종 7) 한성부(漢城府)에서 남부(南部) 낙선방(樂善坊) 왜관동계(倭館洞契)에 거주하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호조좌랑(戶曹佐郎) 홍훤(洪藼)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46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가족은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 외손자 윤만일(尹萬一)이 있다.
홍훤(발급), 한성부(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五年(1666)
1666년(현종 7) 남부(南部) 낙선방(樂善坊) 왜관동계(倭館洞契)에 사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호조좌랑(戶曹佐郎) 홍훤(洪藼)이 46세 때 작성한 호적단자이다. 문서의 훼손이 있으나 주호의 이름이 홍훤임을 알 수 있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본관은 남양이다. 가족은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 사위 유학(幼學) 윤적경(尹積慶) 내외, 외손자 윤만일(尹萬一)이 있다.
춘천부(발급), 홍진호(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八年(1669)
이 문서는 1669년(현종 10) 춘천부(春川府)에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 거주한 종사랑(從仕郞) 홍진호(洪振湖)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주호 홍진호의 본관은 남양이고, 당시 나이는 70세로 경자(1600)생이다. 가족은 처 선산김씨(善山金氏)와 아들 4형제 내외, 2명의 사위 내외, 손자사위 내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7명의 손자와 2명의 증손자까지 모두 24명이 기재되어 있다.
한성부(발급), 홍훤(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八年(1669)
1669년(현종 10) 한성부(漢城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호조좌랑(前戶曹佐郎)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49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한성부 중부(中部) 경행방(慶幸坊) 사거리계(四巨里契)에서 처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위 유학(幼學) 윤적경(尹積慶) 내외 그리고 외손자 윤만일(尹萬一)과 함께 거주하였다.
춘천부(발급), 조운(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十一年(1672)
1672년(현종 13) 춘천부(春川府)에서 생원(生員) 조운(趙橒)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조운은 나이가 52세이고, 본관은 평양이다. 생년간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나이를 통해 신유(1621)생임을 알 수 있다. 조운은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冝洞里)에 있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전공조정랑(前工曹正郞) 홍훤(洪藼)의 집에서 협호(挾戶)의 형태로 거주하였다. 조운의 가족으로는 처 유인(孺人) 홍씨(洪氏), 첫째 아들 충의(忠義) 조위도(趙爲道), 둘째 아들 조위정(趙爲正), 사위 유학(幼學) 최진희(崔晋禧), 딸 유인(孺人) 조씨(趙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한성부(발급), 홍훤(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十一年(1672)
1672년(현종 13) 한성부(漢城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공조정랑(前行工曹正郞)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52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한성부(漢城府) 중부(中部) 경행방(慶幸坊) 사거리계(四巨里契)에서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 사위 유학(幼學) 윤적경(尹積慶) 내외 그리고 첫째 외손자 윤만일(尹萬一), 둘째 외손자 윤시일(尹時一)과 함께 거주하였다.
원주목(발급), 정석사(수취) | 강원도 원주시 | 1장 | 康熙拾肆年(1675)
이 문서는 1675년(숙종 원년) 원주관(原州官)에서 저전동면(楮田洞面) 만종촌(萬宗村)에 거주하는 장사랑(將仕郞) 정석사(鄭錫師)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정석사는 계해(1623)생으로 당시 나이는 53세이고, 본관은 초계이다. 주호의 거주지는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만종리에 해당한다. 가족은 모친 경주김씨(慶州金氏)와 처 원주원씨(原州元氏)가 있다. 기재되어 있는 노비의 수는 총 14구(口)이다. 그 중 솔거노비가 4구이고, 외거노비가 7구이며, 도망노비의 수는 2구이다.
춘천부(발급), 홍훤(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十七年(1678)
1678년(숙종 4) 춘천부(春川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공조정랑(前行工曹正郞)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58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춘천부(春川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서 처 경주이씨(慶州李氏),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와 손자 2명, 제수(弟嫂) 광주안씨(廣州安氏)・안동권씨(安東權氏)・여주민씨(驪州閔氏)와 안동권씨의 아들 4명, 아우 홍근(洪菦) 내외와 그들의 아들 2명, 그리고 조카 조위면(趙爲冕) 내외 등 18명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다.
춘천부(발급), 홍훤(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二十年(1681)
1681년(숙종 7) 춘천부(春川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함흥부판관(前行咸興府判官)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61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춘천부(春川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서 처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아들,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와 손자 2명, 제수(弟嫂) 광주안씨(廣州安氏)・안동권씨(安東權氏)・여주민씨(驪州閔氏)와 광주안씨의 아들, 안동권씨의 아들 3명, 아우 홍근(洪菦) 내외와 그들의 아들 2명, 그리고 조카 조일환(趙日煥) 내외 등 18명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다.
영광군(발급), 이동주(수취) | 전라남도 영광군 | 1장 | 康熙二十六年(1687)
이 문서는 1687년(숙종 13) 영광군(靈光郡)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 행황주진관(行黃州鎭管) 선적진병마첨절제사(善積鎭兵馬僉節制使) 이동주(李東柱)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동주는 진량면(陳良面) 제2지장리(第二紙莊里) 제1통 제2호에서 처 서천이씨(舒川李氏), 아들 이후대(李後大)와 거주하였다.
춘천부(발급), 홍훤(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二十六年(1687)
1687년(숙종 13) 춘천부(春川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함흥판관(前行咸興判官) 함흥진관병마절제도위(咸興鎭管兵馬節制都尉)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67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춘천부(春川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의동리(萬宜洞里)에서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와 아들 홍징서(洪徵叙) 내외,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 외손자 윤원일(尹原一) 내외, 윤문일(尹聞一), 윤능일(尹能一)과 함께 살았다.
춘천부(발급), 홍훤(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二十九年(1690)
1690년(숙종 16) 춘천부(春川府)에서 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함흥판관(前行咸興判官) 함흥진관병마절제도위(咸興鎭管兵馬節制都尉) 홍훤(洪藼)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홍훤은 신유(1621)생으로 당시 나이는 7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춘천부(春川府)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에서 처 숙인(淑人) 이씨(李氏)와 아들 홍징서(洪徵叙) 내외, 사위 윤적경(尹積慶) 내외, 외손자 윤원일(尹原一) 내외 및 외손자 2명 등 9명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였다.
춘천부(발급), 홍주서(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三十二年(1693)
1693년(숙종 19) 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홍주서(洪周叙)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 문서는 홍주서가 주호로 작성된 호구문서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문서이다. 홍주서는 갑진(1664)생으로 당시 나이는 30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홍주서는 춘천부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에서 처 기계유씨(杞溪俞氏)와 함께 살았다.
춘천부(발급), 홍주서(수취) | 강원도 춘천시 | 1장 | 康熙三十五年(1696)
1696년(숙종 22) 춘천부(春川府)에서 유학(幼學) 홍주서(洪周叙)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주서는 갑진(1664)생으로 당시 나이는 33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홍주서의 거주지는 춘천부 동산외면(東山外面) 만법동리(萬法洞里)이며, 처 기계유씨(杞溪俞氏), 아우 홍우서(洪禹叙), 조카 윤원일(尹原一) 내외, 조카 윤사일(尹師一) 내외, 얼질(孼姪) 홍세만(洪世萬)과 함께 거주하였다.
선산부(발급), 이광의(수취) | 경상북도 구미시 | 1장 | 康熙三十八年(1699)
이 문서는 1699년(숙종 25) 선산부(善山府)에서 통덕랑(通德郞) 이광의(李廣義)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광의는 망장면(網障面) 예곡리(禮谷里) 18통 2호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광운(李廣運)에서 이광의로 개명하였다.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 이광의의 나이는 25세이고 본관은 덕수이다. 처 광주김씨(光州金氏)와 아들 이웅상(李熊祥), 딸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소유한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22구, 외거(外居)노비 64구로 총 86구의 노비가 확인된다.
한성부(발급), 홍근(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三十八年(1699)
이 문서는 1699년(숙종 25) 한성부(漢城府)에서 통덕랑(通德郞) 홍근(洪菦)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홍근은 갑술(1634)생으로 나이는 66세이고, 본관은 남양이다. 홍근은 한성부(漢城府) 남부(南部) 낙선방(樂善坊) 와유두리계(瓦有豆里契)에서 처 전주이씨(全州李氏), 첫째 아들 생원(生員) 홍기서(洪箕叙), 둘째 아들 유학(幼學) 홍주서(洪周叙), 둘째 며느리 기계유씨(杞溪俞氏), 셋째 아들 유학 홍우서(洪禹叙), 셋째 며느리 전주이씨(全州李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신석화(발급), 한성부(수취) | 서울특별시 | 1장 | 康熙四十四年(1705)
이 문서는 진사(進士) 신석화(申錫華)가 34세에 작성한 호적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신석화는 북부(北部) 가회방계(嘉會坊契) 제29통 제3호에서 처 여흥민씨(驪興閔氏), 딸, 첫째 아들 신묵남(申墨男), 둘째 아들 신팽남(申彭男)과 함께 거주하였다. 신석화가 거주한 지역은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이다.
한성부(발급), 홍기서(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四十四年(1705)
1705년(숙종 31) 한성부(漢城府)에서 생원(生員) 홍기서(洪箕叙)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홍기서는 나이가 45세이고, 신축(1661)생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홍기서는 한성부(漢城府) 남부(南部) 낙선방(樂善坊) 와유두리계(瓦有豆里契)에서 모친 전주이씨(全州李氏), 처 연일정씨(延日鄭氏), 제수 전주이씨(全州李氏)와 함께 거주하였다.
한성부(발급), 윤행두(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四十七年(1708)
이 문서는 1708년(숙종 34) 한성부(漢城府)에서 유학(幼學) 윤익준(尹翼駿)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윤익준은 무오(1678)생으로 31세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가족은 주호를 제외하고 모두 2명이 기재되어 있는데 처 능성구씨(綾城具氏)와 딸이 있다. 거주지인 한성부 북부(北部) 안국방계(安國坊契)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화동 일대로 짐작된다. 윤익준은 이 문서에서 새롭게 한성부로 입적(入籍)하였다. 소유하고 있는 노비는 남자종 6구(口)와 여자종 9구로 총 15구가 있다.
한성부(발급), 윤익준(수취) | 서울특별시 종로구 | 1장 | 康熙五十年(1711)
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 한성부(漢城府)에서 유학(幼學) 윤익준(尹翼駿)에게 발급해 준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주호 윤익준은 무오(1678)생으로 34세이며, 본관은 남원이다. 가족으로는 처 능성구씨(綾城具氏)와 딸이 있다. 거주지로 기재된 한성부 북부(北部) 안국방계(安國坊契)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화동 일대로 짐작된다. 노비는 총 18구(口)로 1구는 도망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