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묵(李仁黙)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0000.0000-20170501.201600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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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이인묵(李仁黙)
· 형태사항 51.8 X 56.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7.0*7.0)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유학(幼學) 이인묵(李仁黙)이 55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인묵동상면(東上面) 모은담리(慕隱潭里) 제1통 제1호에 거주하고 있으며, 가족은 큰 아들 이희선(李曦善), 큰 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작은 아들 이신선(李信善), 작은 며느리 인천채씨(仁川蔡氏), 손자 이정오(李庭五)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幼學 李仁黙이 55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인묵東上面 慕隱潭里 제1통 제1호에 거주하고 있는데, 統首는 이인묵이 소유한 남자종 貞莭이다.
이인묵병자생이고 본관이 고성이다. 처 密陽朴氏는 60세로 신미생인데, 문서에 사망한 사실을 기재하였다. 때문에 이인묵을 鰥夫로 표기하였다.
이인묵밀양박씨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李曦善李信善이다. 이 문서에는 두 아들이 각기 李馨善李伯善에서 이희선이신선으로 이름을 고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이들의 조부인 李根晦의 호구단자를 보면, 큰 아들 이희선李壽甲에서 李奎祥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작은 아들 이신선李應壽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실이 적혀 있다. 또, 이 문서의 主戶인 이인묵의 52세 호구단자에서는 큰 아들은 李吉善에서 李馨善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둘째 아들은 李伯善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인묵의 두 아들은 수차례 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큰 아들 이희선은 당시 35세로 병신생이고 큰 며느리 昌寧成氏는 36세로 을미생이다. 둘째 아들 신선은 30세이고 신축생이며, 둘째 며느리 仁川蔡氏는 29세로 임인생이다.
손자 童蒙 庭五는 당시 나이가 14세로 정사생이다. 어린 나이이거나 혼인하지 않은 자식은 호적문서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는데, 이처럼 나이가 어리고 혼인하지 않은 손자를 호적문서에 기재한 것은 특이하다.
이인묵은 소유 노비가 1구 있는데 이름은 貞莭이고 나이는 45세로 병술생이다.
한편, 현전하는 고성이씨 가문의 연관문서 중에는 이인묵과 부친이 같은 李驥黙李頀默의 호구단자가 있다. 이를 통해 이기묵과는 친형제지간이고, 이호묵은 모친이 晉州姜氏이므로 이복형제임을 알 수 있다.
문서를 보면, 호의 주소와 주호 및 주호의 사조, 솔거인와 소유 노비에 대해 列書하였고, 戶數가 기재된 행 위에 官印을 찍었다. 문서 첫 행에는 第一統 統首 私奴貞莭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수에 기재된 숫자와 함께 追記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호에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을 朱點으로 표기하였으며 문서 하단에 朱墨으로 男四 女三이라 적어 두었다. 이를 통해 이 호에는 총 7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남자는 4명, 여자는 3명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인묵이 52세에 작성한 호구단자에서는 남자종 정절도 수에 포함시켰는데 반해 이 호구단자에서는 남자종 정절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3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거주 인원이 1명 감소하였는데, 남자종을 거주 인원수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단순한 누락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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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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