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719년(숙종 45)에 숙종이 丁道復을 通政大夫 承政院左承旨 知製敎 兼經筵參贊官 春秋館修撰官로 임명하는 告身이다.
고신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임명장으로 4품 이상 고신과 5품 이하 고신으로 구분한다. 4품 이상 고신은 임금이 직접 내리는 임명장이고, 5품 이하 고신은 臺諫의 署經을 거쳐 이조나 병조에서 내리는 임명장이다.
1719년은 왕세자인 경종이 대리청정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숙종이 사망하는 1720년까지는 왕세자가 신하를 임명할 때 내리는 令旨여야 한다. 하지만 이 문서는 왕이 내리는 문서인 敎旨로 기재되어 있다.
정도복이 임명받은 통정대부는 정3품 상계 문관에게 내리는 품계이고, 좌승지는 승정원에 속한 정3품 당상관이며, 승지는 지제교,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을 겸직하였다. 따라서 본 문서는 4품 이상 고신식에 해당한다.
4품 이상 고신의 양식은 경국대전 禮典의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문서 첫 행에 '敎旨'라 적어 왕이 내리는 문서임을 밝히고, 그 다음 행을 바꿔 '某爲某階某職者'를 내용에 맞추어 기재한다. 4품 이상 고신은 왕명에 의해 발급되는 임명문서인 만큼 어보인 施命之寶를 '年'과 '月'사이에 찍는다. 임명사유가 있는 경우에 문관은 발급날짜의 좌측에, 무관은 우측에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기재한다.
정도복의 고신을 살펴보면 문서 첫머리에 敎旨를 기재하고 본문에는 정도복을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지제교 겸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으로 임명하는 내용을 적었다. 발급연도는 '康熙五十八年 七月 二十四日'로 기재되어 있으며, 施命之寶는 연호 위에 찍었다.
문서의 보존 상태를 살펴보면 중앙에 세로로 반을 접은 자국이 있다.
참고문헌
유지영,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4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정구복, 朝鮮朝의 告身(辭令狀) 檢討, 고문서연구9, 한국고문서학회, 1996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