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영조 35) 春川縣에서 西上面 權山里에 거주하는 幼學 崔準海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수성최씨 가문에서 소유한 문서 중에 준호구는 총 7통이 현존한다. 첫 번째 문서는 1759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일곱번째 문서는 105년 뒤인 1864년에 작성되었다. 이들은 약 1세기 동안 시차를 두고 작성되었기 때문에 수성최씨 가문의 가계 변화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신분과 재산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로 이용되었다. 준호구는 각 가문이 필요로 할 때 관에 신청하였으며 관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을 근거로 이를 등서하여 발급해 주었다. 준호구의 양식은 경국대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먼저 기재하고 '考干支成籍戶口帳內'가 기두어가 된다. 이후로 주호의 거주지와 가족구성원, 주호와 처의 사조 및 거느린 노비에 대해 連書한다. 해당 문서는 이 형식에 맞추어 작성되었다. 그러나 발급기관인 춘천현감의 서압과 춘천현의 관청인, 주협개인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 효력을 발휘하는 문서로 보기 어렵다. 또한 문서 마지막 부분에 '기묘년에 새로 편입된 戶'라고 기재된 것을 볼 때 아마도 준호구의 작성을 위한 초본일 가능성이 높다.
문서에 따르면 최준해는 1731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9세였고 본관은 수성이다. 최준해의 父는 學生 崔昇이고 生父는 幼學 崔晜이다. 이를 통해 최준해는 최승의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崔泰崇이고 曾祖父는 學生 崔燧이다. 外祖父는 學生 朴齊乾이며 외조부의 본관은 밀양이다.
妻 全州李氏는 1732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8세였다. 처의 부는 學生 李杉齡이고 조부는 成均生員 李震沆이다. 증조부는 通德郞 李命虎이고 외조부는 學生 尹應湯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이 문서에 기재된 노비 수는 모두 4구인데 모두 여자종이다. 그리고 이 중 3구는 외방노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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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