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甲辰年) 남효백(南孝柏)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0000.0000-20210501.202000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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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남효백(南孝柏)
· 작성시기 甲辰
· 형태사항 23.6 X 44.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원주 이정동
· 현소장처 원주 이정동

연결자료

안내정보

이 문서는 갑진년 4월 15일 남효백(南孝柏)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남효백이 사돈에게 사위에 대한 칭찬과 면례에 대한 계획을 알리고 있다. 사위가 사랑스러운데다가 공부한 것을 시험해보니 평소 가르침을 인정할만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부모 산소를 면례(緬禮)하려 지관(地官)과 함께 혈자리를 찾으러 이달 22일에 떠날 계획이라 하였다. 남효백이 자신의 집에 있던 사위를 사돈에게 돌려보내면서 간찰을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갑진년 4월 15일 南孝柏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간찰의 발신인이 본지에 내용을 작성할 때 공간이 모자라면 본문의 위쪽 여백에 이어서 쓴다. 위쪽 여백도 다 사용하였으면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고, 이 이상 내용을 작성할 경우에는 본문 행간에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본문 여백에 내용을 돌려가면서 쓰는 것을 '回文'이라고 하며, 이 간찰 역시 회문식으로 작성되었다.
남효백은 처음 오고 간 것이 이미 2달이나 되었으나 아직 사돈과 돈독한 인연을 맺지 못했으니 감회를 어찌 말로 하겠냐며 4월 이때에 사돈의 어머님이 편안하신지 부모 모시며 지내는 형편이 어떤지 안부를 묻고 있다. 자신은 별 탈 없고 아드님은 볼수록 사랑스럽고, 그 공부한 것을 시험해 보니 평소 가르침을 인정할만하다고 하였고, 하루 종일같이 지내다가 갑자기 돌아가는데 임박하니 섭섭한 마음이 암담하다고 하며 근황을 전했다.
이어서 부모 산소를 緬禮하는 것은 오랫동안 계획하였는데, 근래에 비로소 地官을 데리고 산소 혈자리를 정하려고 이달 22일 떠날 계획이라고 하였다. 아픔을 더 억누르기 어렵다고 하면서 간찰을 마쳤다. 면례는 무덤을 옮겨 다시 장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간찰의 수신자는 적혀있지 않지만 남효백이 자신을 '査弟'라 한 것과 간찰에 사돈이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신자는 사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간찰에 처음 오고 간 것이 이미 2달이나 되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남효백 집안과 사돈 집안은 약 2월경에 혼례를 치룬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혼례는 신부 측 집안에서 치르고 다시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남효백은 혼례를 치룬 뒤 후 사위를 데리고 있다가 다시 사돈댁으로 간찰과 함께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보아 남효백이 신부 측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이인숙, 조선시대 간찰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제30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東洋古典硏究 57, 동양고전학회, 2014
정진영, 조선후기 '간찰'자료의 존재형태, 역사와 경계 제102집, 부산경남사학회, 2017
집필자 : 정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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