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갑진년 10월 13일 南孝栢이 사돈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재배(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간찰의 발신인이 본지에 내용을 작성할 때 공간이 모자라면 본문의 위쪽 여백에 이어서 쓴다. 위쪽 여백도 다 사용하였으면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고, 이 이상 내용을 작성할 경우에는 본문 행간에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본문 여백에 내용을 돌려가면서 쓰는 것을 '回文'이라고 하며, 이 간찰 역시 회문식으로 작성되었다.
편지에는 수신인에 대한 관한 기록은 없으나 내용으로 볼 때 사돈에게 보낸 편지임을 알 수 있다.
남효백은 선친의 장례가 어느덧 지나가니 그 아픔을 어찌 견디냐며 안부를 물으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이어서 조부모와 어머니의 형편은 어떤지 상중에 형제가 지내는 상황과 자신의 자식까지 상황이 어떤지 그립다고 하였다.
자신은 지난 장례 날에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아이를 나중에 대신 보내는 것도 하지 못해 인정과 예의 사이에서 저버린 죄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미안해 하였다. 또 추위가 찾아와 사정이 더해졌으나 큰 형이 그쪽에서 돌아와 다행스럽게도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于日의 날짜를 다음 달 3일로 잡았는데 혹시 구애되는 일이 있는지 묻고, 季君이 아이가 돌아가는 편에 한 번 오게 된다면 다행일 것 같다며 편지를 마쳤다. 우일은 신부가 결혼 후 처음 시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말하며, 계군은 상대의 막내동생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참고문헌
정진영, 조선후기 '간찰'자료의 존재형태, 역사와 경계 제102집, 부산경남사학회, 2017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15
김효경, 조선후기 간찰의 피봉(皮封) 서식 연구, 고문서연구 31, 고문서학회, 2007
이인숙, 조선시대 간찰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제30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집필자 : 이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