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02년(광무 6)에 곡산군수 金秊圭에 의해서 발급된 延鳳亮의 호적표이다.
연봉량의 연관문서로는 총 4통의 호적표가 현전하고 있는데 이 문서는 시기적으로 마지막 문서이다.
호적표는 호구단자와 달리 미리 인쇄된 양식에 따라 가족사항을 기록하였고 또한 지역과 시기와 상관없이 동일한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그리고 호주의 배우자에 대한 사조에 대해서 기재하고 있지 않다.
이 문서도 기존의 호적표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호적표에 따르면 호주 연봉량은 上圖面 熊潭里 泰村洞에 거주한다. 연봉량의 이전까지의 호적표에서는 연촌동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 문서에는 태촌동으로 기재되어 있어서 이사를 간 것을 알 수 있다. 나이는 39세이고 본관은 곡산이다. 연봉량의 직업은 農業으로 기재되어 있다. 연봉량의 아버지는 延彩羽, 조부는 延大德, 증조부는 延齊善, 외조는 金千鍾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가족구성원을 기재한 동거친속란에는 어머니와 부인, 동생이 적혀 있다. 어머니 金氏는 61세로 본관은 경주이다. 부인은 慶州金氏로 39세이다. 동생 延鳳色은 34세이다. 호적표에서는 동생 연봉색의 아내인 驪山宋氏가 빠져있다. 이를 통해 여산송씨는 1900년과 1902년 사이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인구 항목에는 男二口, 女二口, 共合四口가 기재되어 있어 연봉량의 가족수와 성비를 파악할 수 있다.
가택 소유현황에 대해서는 己有 草 三間이라고 기재되어 있어 연봉량은 草家형태의 3칸 규모인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 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4
손병규, 明治戶籍과 光武戶籍 비교연구, 泰東古典硏究24,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08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7
집필자 : 신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