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신미년 8월에 咸仁九 등이 城主에게 올린 상서이다.
상서는 소지의 일종으로 백성들이 관찰사, 고을 수령, 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는 청원서를 이른다. 상서에 쓸 수 있는 내용은 청원・소장・진정 등 매우 다양하지만 산송, 효행의 정려가 주류를 이룬다. 연명하여 올릴 경우 等狀의 형태를 띤 것이 많다. 소지에 관련된 규정을 정한 법률서가 없지만 유서필지에서는 시면, 기두어, 결사라는 양식이 소개되어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함인구는 자신을 가리켜 '化民'이라고 칭하고 있다. 화민은 백성이 관에 탄원서를 올릴 때 자기 자신을 낮추는 방식 중 하나로 양반이 사용하였다. 화민에서 화는 '교화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화민을 칭하며 '성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백성'이라는 것이며, 곧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사는 백성임을 나타내는 호칭이었다.
이 상서를 올린 함인구가 사는 邱井面은 현재 강릉시 구정면 일대로 추정된다. 함인구는 경오년 11월에 올린 상서에서 南二里面 魯巖里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함인구는 경오년 11월에서 신미년 8월 사이에 남이리면에서 구정면으로 이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상서의 마지막에는 함인구와 함께 상서를 올린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咸弼榮, 咸瑀根, 咸澤瑚 등이다.
이들이 상서를 올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함인구 등은 선조인 칠봉공의 묘소가 네 산의 묘역 안에 있는데 화전과 관련된 일로 작년에 정소를 했었는데, 다시 정소를 하였다. 지난번에 올린 상서의 뎨김에서 집복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집복을 해달라고 하였다.
성주는 뎨김에서 칠봉공의 산소는 특별하니 묘역 내의 화전을 영구히 침범하지 말라고 하였다. 좌상단에 착관과 서압을 하였고, 뎨김 위에다가 관인 3과를 찍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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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