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기사년 10월에 化民 鄭魯鉉이 城主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는 巡相, 城主, 어사에게 올리는 문서이다. 상서의 내용은 산송, 효행・탁행의 정려를 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문서의 경우 始面을 통해서 성주에게 올린 상서이며, 내용을 보면 효행의 정려를 위해서 작성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상서는 2인 이상이 연명하여 등장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문서 또한 그러하다. 문서의 마지막에는 정노현 외에 윤응규 등 47명의 이름이 있어서 등장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문서를 살펴보면 정노현는 자신을 가리켜 '化民'이라고 칭하고 있다. 화민은 백성이 관에 탄원서를 올릴 때 자기 자신을 낮추는 방식 중 하나로 양반이 사용하였다. 화민은 '성주님의 가르침을 받는 백성'이란 뜻으로, 성주의 관할 지역 내에 사는 백성임을 뜻하는 표현이었다.
정노현 등은 玉溪面(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살았던 故 沈仁鐸의 처 江陵崔氏의 열행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서를 올렸다. 최씨는 정숙하고 예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는데, 남편이 죽자 최씨도 따라서 죽었다. 이에 고을 선비들이 모여 최씨를 포양해달라고 논의하였다.
연관문서를 보면 정노현 등은 무진년 8월과 9월에 어사에게 최씨의 열행에 대해서 상서를 올리고 정려를 받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노현 등은 어사로부터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주에게 상서를 올린 것이다.
상서를 받은 성주는 17일에 뎨김[題音]을 써서 주었다. 성주는 감영에 보고를 할 때 다시 정소하라고 하였다. 성주는 착관과 서압을 하였으며, 뎨김 위에는 관인 1과를 찍었다.
참고문헌
박준호, 고문서의 서명과 인장, 박이정, 2016
최승희, 한국고문서 연구, 지식산업사, 2015
沈永煥, 朝鮮時代 所志類의 着官 연구, 古文書硏究 제14집, 고문서학회, 2005
全炅穆, 朝鮮後期 所志類에 나타나는 '化民'에 대하여, 古文書硏究 제6집, 고문서학회, 1994
집필자 :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