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南陽洪氏 家乘은 현조 郡守公 洪翼俊의 후손 중에서 춘천에 세거한 이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보첩류이다. 가승이라는 문서는 대체로 先系를 단선으로 파악하여 한 가문의 계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자손들을 보다 풍부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17세기 이후 춘천으로 이주한 남양홍씨 가문의 주요 인물에 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군수공 홍익준(1543~1619)은 1576년 식년시에서 진사로 입격하고 1599년 문과에 급제하여 풍기군수를 역임하고 직제학으로 추증되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에서는 홍익준의 아들인 洪琡부터 시작하여 洪遠湖, 洪振湖 - 洪藼, 洪蘊, 洪葕, 洪藎, 洪菦 - 洪周敍 - 洪昌震 - 洪彦喆, 洪彦赫 - 洪履八, 洪履七, 洪履五 - 洪龜錫, 洪箕錫, 洪禹錫 - 洪秉國, 洪秉文까지 인물의 생몰년, 자호, 관력, 혼인관계, 자녀 및 사위, 묘소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직계 인물만 다시 나열하면 홍숙 - 홍진호 - 홍훤 - 홍주서 - 홍창진 - 홍언철 – 홍이팔 - 홍구석 – 홍병국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홍주서, 홍창진, 홍병국은 동족에서 입후하였다.
홍익준의 아들 홍숙은 자가 敬將이고 만력 무인년(1578)에 태어나 현종 경자년(1660)에 83세의 일기로 졸하였으며, 승지로 추증되었다. 부인은 全州柳氏인데 부친은 柳永達, 조부는 縣令 柳均이며 증조는 典籤 柳世龜, 외조부는 倉守 尹綸이다. 묘소는 과천에 있다.
홍숙의 아들 홍진호는 자가 汝振이고 만력 경자년(1600)에 태어나 현종 임자년(1672)에 졸하였다. 부인은 善山金氏인데 부친은 金添命, 조부는 護軍 金繼賀, 증조부는 司直 金世智, 외조부는 縣監 趙思謙이다. 묘소는 양주에 있다.
홍진호의 아들은 홍훤, 홍온, 홍연, 홍신, 홍근이고 사위는 趙橒, 嚴紀, 南聚星, 李志相이다. 홍훤은 자가 樂而이고 천계 신유년(1621)에 태어나 효종 임진년(1652)에 진사가 되고 형조정랑이 되었으며 숙종 계유년(1693)에 졸하였다. 부인은 慶州李氏인데 무오년(1618)에 태어나 계미년(1703)에 향년 86세로 졸하였다. 부친은 同知 李慶集, 조부는 奉事 李溧, 증조는 參判 李廷馨, 외조부는 南斗一이다. 묘소는 양주에 있다.
홍온은 자가 德而이고 천계 을축년(1625)에 태어나 현종 임자년(1672)에 졸하였다. 부인은 廣州安氏인데 부친은 安時稷, 조부는 生員 安宗禮, 외조부는 正言 李景顔이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홍연은 자가 美而이고 천계 정묘년(1627)에 태어나 현종 신해년(1671)에 졸하였다. 부인은 安東權氏인데 부친은 權昕, 외조부는 縣監 李守儉이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홍신은 자가 國而이고 숭정 계유년(1633)에 태어나 현종 경자년(1669)에 졸하였다. 부인은 驪興閔氏인데 부친은 縣監 閔光赫, 조부는 署令 閔枅, 증조부는 參判 閔汝任, 외조부는 金岦이다. 묘소는 춘천에 있다. 홍근은 자가 秀而이고 숭정 갑술년(1634)에 태어나 숙종 계미년(1703)에 졸하였다. 부인은 全州李氏인데 부친은 掌令 李叔達이고 조부는 생원 李文炳이며 증조는 郡守 李維藩이고 외조는 承旨 義烈公 洪命亨이다. 묘소는 양주에 있다.
사위 조운은 평양인으로 司藝에 이르렀고 부친은 奉事 趙濟仁이며 아들은 趙日煥, 趙日燦, 趙日爀이고 사위는 崔晉禧이다. 사위 엄기는 영월인으로 아들은 嚴錫泰, 嚴重泰이고 사위는 金吾衛 宋儒龍이다. 사위 남취성은 의령인으로 부친은 兵使 南斗章이고 아들은 南慶錫이며 사위는 贈參判 李齊, 李嵩齡이다. 사위 이지상은 경주인으로 부친은 都事 李鴻逸이고 그의 아들은 李泰齡, 李泰恒이며 사위는 兪應基이다.
홍훤의 계후자 홍주서는 생부가 홍근이고 자는 仲九이며 갑진년(1664)에 태어나 정미년(1727)에 졸하였다. 부인 杞溪俞氏는 갑진년(1664)에 태어나 향년 76세로 기미년(1739)에 졸하였다. 부친은 僉知 兪樸이고 조부는 郡守 兪希曾이며 증조는 贈承旨 兪大儀이고 외조는 부사 鄭就道이다. 묘소는 춘천에 있다. 홍훤의 사위 尹積慶은 파평인으로 군수를 지냈으며 부친은 尹以咸, 그의 아들은 尹原一과 尹師一이며 사위는 진사 崔應泰와 李碩冕이다.
홍주서의 계후자 홍창진은 생부가 洪攸敍이며 자는 東甫이고 숙종 정축년(1697)에 태어나 경종 신축년(1721)에 진사, 僉樞가 되었고 영종 신묘년(1771)에 졸하였다. 부인은 淑夫人 延安金氏로 병자년(1696)에 태어나 향년 78세로 계사년(1773)에 졸하였다. 부친은 生員 金相岳, 조부는 右尹 金澋, 증조부는 군수 金弘錫, 외조부는 兵使 申鍒이다. 묘소는 춘천에 있다. 사위 李希奭은 함평인으로 부친은 군수 李楙이고 그의 아들은 進士 李垸, 李壽萬, 李壽百이 있다.
홍창진의 첫째 아들 홍언철은 자가 稚明이고, 영조 기미년(1729)에 태어나 정조 병진년(1796)에 졸하였다. 임오년(1762) 사마양시에 입격하였고 계미년(1763)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부친은 李東膺, 조부는 同知 李寅徽, 증조는 承旨 李廷弼, 외조는 목사 鄭啓章이다. 둘째 아들 洪彦赫은 자가 穉晦이고 무오년(1738)에 태어나 계미년(1823)에 졸하였다. 묘소는 만법동에 있다. 부인은 晉州姜氏로 부친은 姜泰世, 조부는 생원 姜憲周, 증조부는 同知 姜宅揆이다.
홍언철의 첫째 아들 홍이팔은 자가 月如이고 임신년(1752)에 태어나 을유년(1825)에 졸하였다. 부인은 전주이씨인데 부친은 參判 李重馥, 조부는 司諫 李耈齡, 증조부는 縣監 李寅漢, 외조부는 병사 閔昌基이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둘째 아들 홍이칠은 자가 日如이고 영조 병술년(1766)에 태어났다. 부인은 文化柳氏인데 부친은 柳行均, 조부는 柳煥文, 증조부는 僉知 柳時模이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셋째 아들 홍이오는 자가 星如이고 영조 신묘년(1771)에 태어나 정조 무신년(1788)에 졸하였다. 부인은 淸州韓氏인데 부친은 진사 韓濟裕, 조부는 韓光理, 증조부는 縣監 韓師億, 외조부는 판서 李廷喆이다. 묘소는 만법동에 있다.
홍이팔의 아들 洪龜錫은 자가 洛瑞이고 임술년(1802)에 태어나 계미년(1883)에 졸하였다. 묘소는 춘천 만법동에 있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부친은 李民初, 조부는 童蒙敎官 李惟簡, 증조부는 縣令 李堉, 외조부는 任琂이다. 홍구석의 계후자 洪秉國은 자가 景文이고 부인은 경주이씨이다.
이외에 홍이칠의 아들 홍기석은 자가 聖範이고 부인은 驪州李氏이고, 홍이오의 아들 홍우석은 자가 君範이고 부인은 平山申氏이며 묘소는 횡성에 있다. 홍우석의 아들 홍병덕은 자가 文甫이고 부인은 南原梁氏이며, 홍주석의 아들 홍병문은 자가 天甫이고 부인은 기계유씨이다. 또한 洪彦赫의 아들 홍이칠은 자가 日如이고 부인은 문화유씨이다.
이 문서는 가승의 일반적인 기재 사항을 따르면서도 자손을 풍부하게 수록하였다는 점과 더불어 부인의 사조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춘천에 세거한 남양홍씨 홍익준 후손 가문의 주요 인물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그들이 혼인을 통해 맺었던 인적네트워크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