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간행한 평창출신 蓬西 辛汎의 시문집이다.
이 문집은 손자 辛象默과 사위 李錫範 등 직계 자손과 門生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목판 인쇄본이다. 총 7권으로 편제되었으며, 天・地・人 3책으로 편찬되었다.
1권에는 서문과 231편의 시와 글이 실려 있고, 2권에는 8편의 儷文과 3편의 誡, 7편의 書가 실려 있다. 3권에는 선생이 여행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 書 9편·記 8편·文 12편, 4권에는 오늘날의 칼럼이라고 할 수 있는 說 11편・論 3편・雜著 12편・雜辨 9편, 5권에는 우주의 법칙을 천문학과 수학으로 풀이한 氣數解 33편, 6권에는 역학을 다룬 태극문답 등 4편, 7권에는 6편의 속집・행장・발문・중수기 등이 실렸다. 서문은 李容稙과 尹瀗이 지었고, 발문은 최익현과 후손인 辛承禹·辛奎集이 지었다.
특히 3권의 '補結錢成冊序'는 봉평의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논한 글로 봉평은 영서의 가장 깊은 산골짜기로 면의 규모는 작은데 부담해야 할 부역이 많아 열 집에 아홉 집이 품살이를 하고 있고, 田結의 폐단이 가장 심하다고 하였다. 이에 향약계를 조직한 일과 민보결을 시행한 내력을 소상히 적고 있다.
신범(1832~1873) 선생은 본관이 영월이고, 자는 中淵, 호는 蓬西이다. 평창군 봉평면 원길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이기이원론과 위정척사 운동을 주도했던 華西 李恒老의 제자가 되어 그의 학통을 이어 받았다. 행장에 따르면 金平黙, 柳重敎, 徐應淳과 교유하였다.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인 봉평에서 `蓬西齋'를 세워 후진양성에 힘썼다. 操思亭을 지었는데 봉서유고 3권에 操思亭記가 실려있다. 신범은 '조사정' 이름의 뜻에 대해서 맹부자께서 일찍이 배우는 자의 병폐에 대하여 '잡고 있으면 존재하고, 버리면 없어진다', 또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취해 이름지었다고 하였다.
최익현은 발문에서, 선생은 天姿가 道에 가깝고 세속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溫恭遜志와 切問近思의 학문을 하여 그 사사로움을 물리치고 향리의 선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선생의 문장은 일상적으로 먹는 菽粟이나 늘 입는 布帛과 같아서 과장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에 빠지지 않고 仁義・충신・인륜의 정상(正常)의 이치에서 나왔으며, 그 학문은 소학을 근본으로 하고 주역에 조예가 깊어서 氣數・河洛에 독창적인 글을 남겼다고 하였다.
연도
내용
1823년
강원도 강릉부 원길촌(현 평창군 봉평면 원길리)
1831~32년
대학 조목에 능통
1836년
부친 신석우 사망, 시묘살이
1840년
사서삼경 통달, 종형 신운(辛澐)의 지도
(불명)
벽계에서 화서 이항로 선생에게 수학
1843년
모친 신천강씨 사망
1854년
송은집서(松隱集序) 작성
1861년
오대산에 오름
1866년
팔석정기(八石亭記) 작성
1868년
오봉약기(五峰略記) 작성
1870년
월탄유고(月灘遺稿) 개초(改草) 소서(小序) 작성
1878년
류성재께 올리는 글[上柳省齋書] 작성
187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