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866년(고종 3)에 春川府 南內面 三川里에 거주하는 幼學 崔寅矩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춘천 삭녕최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6통의 준호구가 현존하는데 1852년부터 1873년까지 21년에 걸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이중에서 다섯 번째로 작성된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인구는 181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였고 본관은 삭녕이다. 이전 문서인 1864년의 문서 이후로 2년 뒤에 작성된 문서이므로 당시 최인구의 나이는 54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妻의 나이는 맞게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인구의 나이가 잘못 기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인구의 父는 學生 崔一敏이고 生父는 학생 崔性敏이다. 祖父는 학생 崔建柱이고 曾祖父는 학생 崔命性이다. 外祖父는 학생 崔在城이고 본관은 수성이다.
처 全州柳氏는 1824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3세였다. 부는 學生 柳智淵이고 조부는 學生 柳聖運이다. 증조부는 學生 柳彦漢이고 외조부는 學生 李植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口가 있는데 이름과 출생년, 나이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식은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기재하고 考某年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해 주호와 처의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한 노비에 대해 連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대해서는 列書하고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준호구와 호구단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문서식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해당 문서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준호구에는 문서를 발급하고 확인한 관리가 수결을 하고 官印과 周挾改印을 찍는다. 해당 문서에는 관인과 주협개인이 같은 위치에 겹쳐서 찍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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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 박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