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최인구(崔寅矩)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52.4211-20160501.20150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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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춘천부(春川府)
수취 : 최인구(崔寅矩)
· 작성지역 춘천부
· 작성시기 咸豊二年(1852)
· 형태사항 69.3 X 59.4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8.0*8.0, 春川府印)
1 (흑색, 장방형, 12.0*4.0, 周挾改印)
· 원소장처 춘천 삭녕최씨
· 현소장처 춘천 김현식

연결자료

안내정보

1852년 최인구(崔寅矩)춘천부(春川府)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準戶口)이다. 최인구춘천부 남내면(南內面) 삼천리(三川里)에 거주하였고 문서를 발급받을 당시의 나이는 40세였으며 본관은 삭녕이다. 가족은 처(妻) 전주류씨(全州柳氏, 29세)가 있다.
소유노비는 노(奴) 1구(口)가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52년(철종 3년)春川府에서 南內面 三川里에 거주하는 幼學 崔寅矩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현존하는 삭녕최씨 가문의 문서 중 준호구 6통이 있는데, 첫 번째 문서는 1852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6번째 문서는 21년 후인 1873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현존하는 삭녕최씨 가문의 준호구 중 첫 번째 문서이다.
준호구는 主戶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문서로 호구대장의 내용에 의거하여 가족구성원과 소유 노비에 대해 등서해 준다. 일반적으로 준호구는 連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문서는 주호와 妻의 사조에 대해서는 列書하고 소유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또한 官印과 周挾改印을 문서 좌측에 겹쳐서 찍은 것이 특징적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인구181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0세였고 본관은 삭녕이다. 최인구의 父는 學生 崔必隣이고 生父는 學生 崔一敏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통해 최인구최필린에게 입양된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祖父는 學生 崔建柱이고 曾祖父는 學生 崔命性이다. 外祖父는 學生 崔在城이고 본관은 수성이다.
全州柳氏1824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9세였다. 부는 學生 柳智淵이고 조부는 學生 柳聖運이다. 증조부는 學生 柳彦漢이고 외조부는 學生 李植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 노비는 노(奴) 1口있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유재춘, 강원도내 戶口 古文書의 현황과 특이사례에 대한 검토, 古文書硏究39, 한국고문서학회, 2011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박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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