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평동(下坪洞) 성황계안(城隍禊案)

ㆍ자료UCI: KNU+GWKSMC+KSM-XG.1915.4275-20180501.201700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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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 사회-조직/운영-계문서
· 작성주체 발급 : 성황계(城隍禊)
· 작성지역 영월군
· 작성시기 乙卯(1915)
· 형태사항 18.2 X 18.0 | 1 | 종이 | 한자 | 성책
· 원소장처 영월 영월신씨
· 현소장처 영월문화예술회관

안내정보

이 문서는 1915년 영월 下坪洞에서 결성한 城隍契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들을 기록한 것이다. 성황계는 동제(洞祭)의 하나로 성황당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성황계에 참여한 인물은 모두 78명이며 영월신씨, 영월엄씨, 순흥안씨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 재원이 확보되는 모습도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15년 영월 下坪洞에서 조직·운영된 城隍契에 관한 사항을 수록한 것이다. 본래 영월신씨 가문에서 전래되어 왔으나 최근 영월문화예술회관으로 기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성황계는 영월 하평동의 洞祭인 성황당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으며 근현대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황계의 중심이 되는 하평동영월읍에서 서쪽으로 약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하평동은 본래 坪洞에 속했으나 이후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평동하평동으로 구분되었다. 평동줄골이라 불리던 곳으로 나루터를 기준으로 위쪽이 상평동인데 윗들골이라 불렸고, 아래쪽은 하평동인데 아랫들골로 불렸다. 현재는 영월 남면 북쌍리에 속한다.
문서의 내용은 크게 條目例, 座目, 祝文式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조목례는 성황계의 운영에 관한 사항으로 5개의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조항은 성황당의 제사지내는 날짜를 정한 것으로 매년 1월 3일로 규정되었다.
둘째 조항부터 다섯째 조항까지는 모두 성황계의 운영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 조항은 제사를 지내는 날에 契錢을 모두 징수한다고 하였고 셋째 조항은 新戶의 경우 5錢씩 납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넷째 조항은 追入員의 경우 1냥 5전을 납부하게 한다고 하였고 다섯째 조항은 계원 중에 이거한 사람의 계전은 그 본가에서 추납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좌목은 성황계를 구성한 계원의 명단으로 총 78명이 입록되어 있다. 계원을 기록한 방식은 성명, 자, 생년 간지, 본관을 쓴 것이 가장 기본적이나 간혹 자, 본관 등이 빠져 있는 경우도 있다. 계원들의 본관과 성씨를 살펴보면 영월신씨가 2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영월엄씨가 11명, 순흥안씨가 9명, 남양홍씨가 4명, 밀양박씨가 3명이다. 그리고 평창이씨, 단양우씨, 횡성고씨, 전주최씨, 한산이씨가 각각 2명, 문화유씨, 예안이씨, 진성이씨, 진주강씨가 각각 1명이다. 이를 통해 보면 영월신씨, 영월엄씨와 같은 토성들이 계의 주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문은 성황신에게 제사지내는 데 쓰인 형식으로 서문, 본문, 말미로 구성되었다. 서문은 일반적인 축문 형식과 같이 維歲次로 시작하여 제사일자, 집사자를 기록하였다. 본문은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송체 형식의 한자 4구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말미에는 흠향의 의미를 담은 尙饗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문서는 한 마을을 단위로 종교적 제사를 위하여 만들어진 동계의 구성원과 운영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사용된 화폐의 단위 등을 통해 당시의 사회경제적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데에서도 사료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김철오, 영월 북쌍리 하평동성황계안 소개, 박물관지11, 강원대학교박물관, 2004
집필자 : 고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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