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민영휘(閔泳徽) 간찰(簡札)

ㆍ자료UCI: KNU+GWKSMC+KSM-XF.1908.0000-20210501.202000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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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 개인-생활-서간
· 작성주체 발급 : 민영휘(閔泳徽)
· 작성시기 戊申(1908)
· 형태사항 25.4 X 29.7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춘천 평산신씨
· 현소장처 춘천 평산신씨

안내정보

이 문서는 1908년 3월 그믐에 민영휘(閔泳徽)가 보낸 간찰이다.
간찰의 수신인은 명확치 않으나 민영휘가 자신을 동생이라 적은 것을 보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에게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내용을 보면 토지의 경계와 관련하여 생긴 오해에 대해 민영휘는 장토(庄土)의 일은 해당 도(道)의 판결이 있었고, 선장(先丈)의 수적(手蹟)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따지지 말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908년 3월 그믐에 閔泳徽가 작성한 간찰이다.
간찰은 書簡, 書信, 書札, 簡牘 등으로 부르며, 고문서 형태로 전해진다. 문집에 수록된 간찰은 '書'로 분류하여 수록하기도 하는데, '서'란 고문서 형태의 간찰이 문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 간찰은 일반적으로 皮封과 내용으로 구성되고, 내용은 다시 本紙와 別紙로 구별할 수 있다. 흔히 간찰이라고 하는 것은 편지의 본문인 본지를 의미한다. 小紙, 胎紙 등으로도 불리는 별지에는 본지에 적기 어려운 구체적인 내용이나 보내는 선물, 은밀한 부탁이나 청탁 등이 기록된다.
간찰의 내용은 書頭, 候問, 自叙, 述事, 結尾로 나뉜다. 서두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안부 인사를 적고, 후문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다. 자서에는 간찰을 보내는 사람 본인의 근황을 서술하며, 술사에서는 간찰을 보낸 이유를 적고, 결미는 간찰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간단히 끝맺는 말과 날짜, 성명, 올림[再拜] 등의 항목을 순서대로 적는다.
이 간찰의 수신인은 적혀있지 않으나 민영휘가 자신을 '弟'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고, '兄家'라고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 친척관계는 아닌 듯 보인다. 알 수 있다. 민영휘1852년(철종 3)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한 인물로 본관은 여흥이다. 따라서 간찰에 적힌 무신년1908년(순종 2)으로 파악된다.
간찰의 내용을 보면 소식이 끊긴 뒤에 편지를 받아 위로가 되었다고 시작하였다. 이어서 庄土의 일은 작년에 해당하는 道의 판결이 있었고, 先丈의 手蹟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해당 토지는 형의 집안과 직접 매매한 것이 아니니 지금 본래 값으로 경계를 물리는 것을 따질 겨를이 있겠냐면서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이 간찰은 민영휘의 형이 토지경계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에 대해서 도의 판결과 상대방 수적이 남아있는 것, 또 직접 매매하지 않은 점을 들어 따질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본래 값으로 경계를 물리는 것이 어떤지에 대한 민영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인숙, 조선시대 간찰의 문화사적 의의, 민족문화논총 제30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박대현,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연구,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문창호, 簡札의 安否人事에 대한 類型, 동양고전연구 57, 동양고전학회, 2014
정진영, 선후기 '간찰'자료의 존재형태, 역사와 경계 제102집, 부산경남사학회, 2017
집필자 : 정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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