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이희태(李羲泰) 준호구(準戶口)

ㆍ자료UCI: KNU+GWKSMC+KSM-XD.1898.4792-20180501.20170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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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안동부(安東府)
수취 : 이희태(李羲泰)
· 작성지역 안동부
· 작성시기 光武二年(1898)
· 형태사항 48.9 X 53.3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인장서명 1 (적색, 정방형, 4.7*4.7, 安東府印)
1 (흑색, 장방형, 17.2*8.0, 周挾無改印)
· 원소장처 춘양 전주이씨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안내정보

이 문서는 1898년안동부(安東府)에서 유학(幼學) 이희태(李羲泰)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가 작성될 당시 이희태의 나이는 50세이고, 기유(1849)생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가족으로는 처 안동최씨(安東崔氏), 아우 유학 이희복(李羲復), 제수 진보이씨(眞寶李氏), 사촌아우 유학 이희승(李羲升), 사촌제수 진보이씨, 아들 유학 이두섭(李斗燮), 며느리 한양조씨(漢陽趙氏)가 있다.
주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곳은 춘양(春陽) 서면(西面)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봉화군 봉성면 일대로 추정된다.
이 문서의 작성 시기를 보면 호적표 양식으로 작성되어야 하지만 준호구와 호적표 양식이 혼용된 형태로 호구내용이 기재되었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1898년安東府에서 幼學 李羲泰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희태의 당시 나이는 50세이고, 생년은 기유년(1849)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거주지는 春陽 西面으로,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상 봉화군 봉성면 일대로 추정된다. 주호의 부친은 學生 李齋淵이고, 생부는 학생 李兢淵이다. 조부는 학생 李鼎鎭이며, 증조부는 학생 李致敬이다. 외조부는 학생 權載容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가족구성원은 모두 7명으로 처 崔氏, 아우 유학 李羲復, 제수 李氏, 사촌아우 유학 李羲升, 사촌제수 이씨, 아들 유학 李斗燮, 며느리 趙氏가 있다. 처 최씨는 당시 30세로, 기사(1869)생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처의 사조에 대해서는 문서에 기재되어있지 않다.
아우 이희복은 47세이고, 생년은 임자년(1852)이다. 제수 이씨는 51세로, 무신(1848)생이며, 본관은 진보이다. 사촌아우 이희승은 35세이고, 갑자(1864)생이다. 사촌제수 이씨의 본관은 진보이며, 나이는 34세이고, 생년은 을축년(1865)이다.
아들 이두섭신사(1881)생으로 당시 나이는 18세이고, 며느리 한양조씨는 21세이고, 생년은 무인년(1878)이다.
문서의 작성 시기는 광무 2년1898년으로, 이 당시는 1896년 9월에 공표된 칙령 제61호 호구조사규칙과 내부령 제8호 호구조사세칙으로 인해 호구조사방식이 기존의 호구단자・준호구에서 신식호적인 호적표・통표로 바뀐 때였다. 신식호적 방식이 공표되고 도입된 지 약 1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는 준호구 양식으로 작성되었다. 문서의 마지막 행에는 '草家五間'이라고 기재되었는데, 주호의 가택 규모 및 종류를 기재하는 것은 호적표의 작성방식이다. 이를 통해 이 문서는 준호구 양식과 호적표 양식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문현주, 조선후기 戶口文書의 작성 과정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조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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