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석(崔漢錫) 호구단자(戶口單子)

ㆍ자료UCI: KNU+GWKSMC+KSM-XD.0000.0000-20180501.20170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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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고문서-증빙류-호적 |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 작성주체 발급 : 조시규(崔漢錫)
· 작성시기 [조선후기]
· 형태사항 37.9 X 39.0 | 1장 | 종이 | 한자 | 낱장
· 원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 현소장처 원주역사박물관

안내정보

이 문서는 유학(幼學) 최한석(崔漢錫)이 63세때 작성한 호적단자이다.
호의 주소 및 문서의 작성연도가 기재되지 않아 작성지역 및 작성시기는 알 수 없다. 주호 최한석계미생으로 나이가 63세이고, 본관은 강화이다. 가족으로는 처 양천허성(陽川許姓)이 기재되어 있으나 사망하였다.
노비는 기재되지 않았다.

상세정보

이 문서는 幼學 崔漢錫이 63세 때 작성한 호적단자이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호적단자 앞머리에는 주소를 적는데 본 문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재하지 않고, 바로 주호의 직역, 성명, 나이, 생년간지, 본관을 기재하였다. 또한 문서의 작성연도도 기재되지 않아 작성시기를 알 수 없다.
주호 최한석계미생으로 나이가 63세이고, 본관은 강화이다. 주호의 사조를 살펴보면 부친은 學生 崔在昆이고, 조부는 학생 崔益錄이며, 증조부는 학생 崔杜國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春根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가족으로는 처 陽川許姓이 기재되어 있다. 양천허성을유생으로 나이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의 사조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처의 부친은 학생 許利濟이고, 조부는 학생 許熤이며, 증조부는 학생 許橚이다. 외조부는 학생 金載城으로 본관은 정선이다. 처의 호칭에 '姓'을 쓰고 있는데, 성은 평민의 아녀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문서를 살펴보면 주호 및 처의 기재사항 앞에 朱點이 찍혀 있고, 朱墨으로 '二名 男一 女一'을 기재하여 가족의 수와 성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처 양천허성은 사망하였음에도 최한석 戶의 구성원에 포함되었다.
노비는 기재되지 않았다.
문서의 보존상태는 짙은 오염이 넓게 분포하고, 문서의 좌측 상단 일부가 탈락된 모습이다.
참고문헌
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역사비평사, 2015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42, 한국고문서학회, 2013
손병규, 호적, 휴머니스트, 2006
崔承熙,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2003
집필자 : 황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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