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동해 남양홍씨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현재에 이르는 竹林선생 洪信錫의 연보이다. 연보는 어떤 인물의 일대기를 연차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해당 인물의 후손 또는 제자가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신석의 연보도 이와 같이 매년의 주요한 일들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연보작성방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연보의 작성자는 그의 후손으로 추정되나 구체적인 인물은 알 수 없고, 작성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홍신석이 사망한 해가 1768년이므로 이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연보의 내용은 혼례 및 상장례와 같은 가문의 대소사, 학문의 점진적인 수련과정, 과거시험의 응시, 농사의 풍흉, 자녀의 출생, 전라도를 유람한 것 등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특별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21년 1세. 정월, 6일 술시(저녁 7시~9시)에 삼척도호부 북평면 松蘿의 본댁에서 공이 태어났다. 이때 부친의 나이는 42세, 모친의 나이는 45세이다. 삼척도호부 북평면 송라의 현재 지명은 동해시 송정동이다.
1722년 2세. 천연두를 앓았다.
1728년 8세. 정월, 가문에서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2월, 백부의 상을 당하였다.
1730년 10세. 이 해에 대풍년이 들었다.
1731년 11세. 이 해에 대흉년이 들었다. 2월, 백숙모의 상을 당하였다.
1732년 12세. 이 해에 또 대흉년이 들었다. 8월, 부친의 상을 당하였다. 공은 7월부터 설사병을 얻어 병환이 점점 위중해졌으나 出喪하였고 11월에 장례를 지냈다.
1733년 13세. 初終이후로 밤낮으로 여막에 거처하며 죽을 마시고 구슬프게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734년 14세. 삼년상으로 마쳤다. 伯氏에게서 고체시 짓는 법을 수학하였다.
1735년 15세. 10월, 同淮里로 가서 중매로 혼인하였다. 매부는 삼척인 金應瀞이다.
1736년 16세. 9월, 비로소 서당계에서 수학하였다.
1737년 17세. 11월, 백씨의 상을 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이후 4~5년간 기침이 더욱 심하여 좋은 약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끝내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1739년 19세. 3월, 비로소 서당을 건립하였다. 9월, 松旨에 가서 季兄의 혼례를 주관하였다.
1740년 20세. 12월, 관례를 더하여 행하였다.
1741년 21세. 11월, 灑雲里에 가서 季妹의 혼례를 행하였다. 매제는 영일인 鄭益垕이다.
1742년 22세. 8월, 모친상을 당하여 죽을 마시고 애통해하는 마음이 더욱 지극하였다. 같은 달에 從仲兄의 상을 당하였다.
1744년 24세. 이 해에 홍수가 있었다. 남쪽 嶺雲으로 유람하여 봉화 覺花寺를 관람하고 순흥 瑤草菴으로 돌아왔다.
1745년 25세. 11월 3일 가례를 행하고 쇄운리 彦堂洞 崔榆亭댁에 모였다.
1746년 26세. 8월, 홍천감시에서 떨어졌다. 같은 달 從弟三兄의 상을 당하였다. 9월, 季父의 喪을 당하였다.
1749년 29세. 2월, 본댁의 서쪽에 松第를 건립하였다. 8월, 춘천감시 終場에 합격하였다.
1750년 30세. 2월, 회시에서 떨어졌다.
1751년 31세. 12월, 仲嫂의 상을 당하였다.
1752년 32세. 8월, 김화감시에서 떨어졌다.
1753년 33세. 2월, 딸이 태어났다.
1754년 34세. 2월, 족보를 수정할 것을 종중에 보내려고 상경하여 啓事洞 故領議政 洪致中의 손자 洪益彬의 집에 갔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1755년 35세. 2월, 영월감시에서 떨어졌다. 8월, 양양감시에서 떨어졌다. 본부의 東堂에서 합격하였다. 2월, 숙모의 상을 당하였다. 7월, 영남을 유람하고 돌아왔다.
1756년 36세. 이 해에 대흉년이 들었다. 4월, 伯兄의 상을 당하였다. 6월, 工曹에 들어갔다. 9월, 仲氏의 상을 당하였다.
1757년 37세. 공조의 印信을 봉행하려 상경하였다.
1758년 38세. 횡성감시에서 떨어졌다.
1759년 39세. 정월, 진상하는 인삼에 관해 상소할 것을 마을에서 정하여 보냈기 때문에 상경하였다. 수개월 후에 돌아왔는데 곧바로 특별히 견감한다는 임금의 허가를 받았다.
1760년 40세. 4월, 딸이 태어났다.
1761년 41세. 8월, 홍천감시에서 떨어졌다. 10월 원주복시에서 또 떨어졌다.
1762년 42세. 5월, 천연두를 다시 앓았다. 12월, 아들 洪達龍이 태어났다.
1763년 43세. 8월, 간성감시에서 합격하였으나 회시에서 떨어졌다. 종장에서 합격하였다.
1764년 44세. 7월, 남계 박세채를 문묘하는 일로 위판을 봉행하고 울진현에 갔다. 8월, 영월감시에서 떨어졌다. 종장에서 합격하였다.
1765년 45세. 行西倉別監이 되었다.
1766년 46세. 강릉에 가서 복시를 보았다.
1767년 47세. 금성감시에서 떨어졌다. 금성은 김화의 옛 지명이다.
1768년 48세. 정월, 향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홍신석이라는 인물과 그의 일생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보면 그는 유년기 시절부터 친인척의 상장례에 관한 경험이 풍부했음을 알 수 있고 청년기부터는 입신양명을 위한 과거시험에 매진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후기 삼척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족의 일생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향후 생활사 및 문화사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